강도 만난 이웃을 위하여
 
리디아의 정원」은, 아빠의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가족들은 리디아를 외삼촌 집으로 잠시 보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도시로 온 리디아는 기차역에서 할머니, 아빠,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짙은 회색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은 알록달록했던 텃밭과 상대적이다. 삭막한 기차역에서 작아진 리디아는 두렵고 서운한 감정이 교차되어 떠날 준비를 한다. 

삼촌 빵가게에 도착한 리디아. 다른 도심과 마찬가지로 붉은 벽돌과 철제 계단 딱딱한 도시 모습 그대로다. 리디아는 봄을 기다리고 있으며 웃지 않는 삼촌을 언젠가 웃게 할 것이라며 기대에 차 있다. 리디아는 열심히 제빵 기술을 익히고 빵가게 직원들과도 친해졌다. 그리고 외삼촌 몰래 비밀작전을 실행한다.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옥상에 비밀정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빵 가게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리디아의 실수에 엠마 아줌마가 목젖이 보일만큼 크게 웃고 가게 앞을 지나가던 우체부 아저씨 역시 따뜻한 시선으로 리디아를 쳐다본다.

리디아 주변으로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빵 가게 건물이 완전 달라졌다. 사람들은 꽃구경 하느라 바쁘고. 모두들 리디아를 ‘원예사 아가씨’라고 부른다. 그렇게 즐거운 삼촌집의 생활은 아빠가 취직 돼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끝이 날 시점이다. 

누구보다 리디아를 꽉 껴안아주는 외삼촌. 그리고 기차역 역시 리디아가 처음 만났던 잿빛 기차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리디아 시선에서 이제 이곳은 따뜻한 노란빛이 머무는 곳이 된 거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리디아라는 작은 아이를 통해 소망과 위로를 준다. 작은 아이가 어려움을 견뎌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리디아는 신앙여정에 비유해 보면, 고난을 많이 겪는 아이다. 아빠의 실직으로 원치 않는 도시의 삼촌 집으로 보내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우리에게 어느 날 원치 않는 일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희망이 사라지고 맘의 어두움이 찾아 올 텐데, 리디아는 그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환경에 맞게 잘 견디어 낸다.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소망까지 나누어 준다. 나의 슬픔과 어려움에 빠져 이웃을 돌볼 여력이 없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누가 강도 만난 이웃인지 알려주셨다. 도와줘야 하는 사람은 먼저 ‘나’고 두 번째는 ‘이웃’이다. 내가 주님과 떠나 있는 것 같다면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 어서 주님께 가도록 말이다. 이어서 이웃이 주님과 멀어져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 이웃을 도와주어야 한다. 어서 주님께로 가도록 말이다.

나와 이웃은 모두 주님께 잠시도 멀어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착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가서 나도 선하게 실천해야 한다. 강도 만난 이웃이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낫고 도와준 나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 병 환자들의 이웃이 되어 그들의 고름까지 입으로 빨아 주면서 그들과 온전히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였다. 그들은 손양원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보았다. 일본의 하천풍언도 마더 테레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강도 만난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쳐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가족과 떨어진 낯선 곳에서 비밀 정원을 만든 리디아는 꽃을 피워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한다. 고난과 아픔을 새로운 창조물로 바꾼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모습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이나 어려움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주님이 계획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섭리 중 하나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여겨 불평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면, 우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강도 만난 자는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연단을 받는 것이고, 도와주는 이웃도 사랑을 실천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강도 만난 자가 될 수도 있고, 이웃도 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주님의 이름으로 견디고 사랑하며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우린 모두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