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가야 하는 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선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한 부류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러 간 여인들로 부활의 증언자들이고, 한 부류는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로 부활의 은폐자들이다. 천사의 부활 소식을 듣고 되돌아가는 여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에 대한 경외였기에 희망과 기쁨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두려움은 대제사장에게 달려가 보고를 드렸다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부활 사건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안위에 불편을 끼치는 정도였다. 같은 사건 앞에서 나타나는 태도가 다른 것은 그들의 내면 상태와 체험과 관심사가 달랐다. ‘태도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태도는 단순히 외적인 형식이나 표현이 아닌, 내면의 상태가 반영되어 나오는 존재의 표현이다. 좋은 태도, 긍정적인 태도, 생명을 주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태도는 그 안에 그러한 지향과 마음이 있다. 그러한 토양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면 빛을 드러내고 진리를 따르며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이 예사처럼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나도 참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육신의 것을 채우기에 급급한 삶이었다. 만족이 없었고 평안이 없었다. 채울 수 없는 허전함과 공허함이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내쫓은 채 마음에 빗장을 질렀기 때문임을 알지 못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맞아들였을 때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 펼쳐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접한 두 여인과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달려갔다. 함께 열심히 달리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달리고 있었다.

경비병과 같은 불신자들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달리고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땅의 것, 육신의 것, 세상 것에 한 발을 걸치고 절뚝거리며 달려가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참된 진리 안에 참 믿음의 생활을 살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생명의 근원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닌, 썩어질 제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 자체를 지나치게 집착하고 구할 때 점점 영혼이 빛을 떠나 어두움에 가까워지게 된다. 썩어질 것을 구하다보면 그 마음도 같이 썩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이기심과 현세적 축복과 자기 만족을 위한 신앙의 태도,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신앙의 태도,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지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참된 진리 안에 거하며 영원토록 있을 양식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 동기와 행위를 통해 영혼이 점점 더 성장하여 천국의 향취가 나타나게 하신다. 눈앞의 집착을 버리고 영원한 가치를 찾는 사람과,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소유만 잘 되도록 복을 달라고 비는 사람의 신앙 태도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통회하며 자신의 유익과 즐거움을 구하기보다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과,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현세적 이익에 매달리는 사람의 영혼 간에는 깊이와 넓이의 차이가 있다.

신앙의 태도가 분명해야 인생의 고통과 좌절, 하나님의 연단을 바르게 이해하고 순종하며 꾸준히 갈 수 있다. 그리할 때 영혼은 분명히 성장한다. 영혼이 성장하지 않으면 외모가 아름답고 지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해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교만과 아집으로 인한 죄성으로 지옥의 악취를 풍기게 된다. 죽는 순간에도 여전히 영혼이 미숙하고 어린 상태에 있다면 그만큼 비참한 것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고 고집을 부리며 남을 지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시기 질투하며 주님을 의뢰하는 법을 모르고 사소한 일에 근심한다면, 그런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면 영혼은 거의 자라지 않은 것이며 많은 세월들을 허비한 것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성한 자로 성장하기 위함이지, 이 땅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뚫고 부활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는, 참된 진리 안에서 신앙의 태도를 분명히 하도록 다시 한 번 일깨우는 부활절이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