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숲으로의 여행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있을 것이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기도회 중에 이 찬양을 부르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애써 태연한척 하려고 해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가슴이 조여 오면서 답답하다.

“주님, 저에게 힘들게 다가오는 것들을 왜 사랑할 수가 없을까요?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이 왜 이렇게 부족하고, 메마른 가슴은 아프기만 한 걸까요? 이런 마음으로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없어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주님은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어찌하여 방황하고 있느냐? 사람 속에서, 세상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 거기에는 네가 원하는 것이 없지 않느냐? 너는 내게로 와서 답을 얻으라.”

해답은 간단했다. 하나님께로 가는 것. 어떻게 생각해보면 단순한 것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어린양이 무리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목자를 애타게 찾는 격이 아닌가?

작은 방, 책상과 책장, 이불장 하나, 소박한 공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창문 곁 작고 가냘픈 애플 민트가 놓여 있다. 작년에 어떤 분이 선물로 주신 것인데 물도 꼬박꼬박 주고, 나름 신경을 썼었는데 몇 개월 있다가 모든 잎이 말라 죽어 버렸다. 어느 순간 까맣게 탄 듯 죽어버린 줄기에서 연둣빛 민트 잎이 넝쿨처럼 하늘을 향해 자라나고 있다. “넌 언제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컸니?” 순간 신기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방울 속에 작은 소망이 샘솟는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이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무기력할 때, 주님은 이 무지한 자를 고독의 숲으로 초대하셨다. “내게로 오라. 고독을 맛보며 내게로 오라.” 삶에 활력이 넘칠 때, 제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주님은 보이지 않고 내 생활 속에 잠깐 숨어계시는 분으로 여기고 만다. 주님은 숨죽여 조용히 서 계신다. 내가 깨달을 때까지 주님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리고 서 계시다가 찾고 부를 때, 깨닫고 돌이킬 때 내 손을 잡아 고독의 길로 안내하신다.

그 길이 장차 주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일까라는 의문이 들고, 막상 고독과 대면하면 몸서리칠 만큼 싫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아니신가? 이제부터는 고독을 친한 벗으로 여기리라.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만 고독과 연합할 수 있으리라.

고독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깨달은 소중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며, 내게 주신 은혜를 헛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반성하며 다시금 제자리로 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만족하는 것에 집중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공허함과 허탄함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고독은 외로움도, 적막함도 쓸쓸함도 아니다. 참된 고독은 하나님과의 대면의 시간으로 모든 것을 중지할 만큼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고독 자매여, 저와 함께 좁은 길로 갑시다. 날뛰는 망아지 같은 이 몸을 때때로 고독 자매가 꽁꽁 싸매어줌으로 그 길로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걸어갑니다. 자매는 저를 자주 따라다니며 친한 벗이 되려고 하나, 전 아직도 주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많은 까닭에 자매를 진실한 맘으로 웃으며 반가이 맞이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오! 고독자매여, 그러나 내게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반가이 동행해주니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자매는 제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천국 길로 인도하는 친절한 분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외면할 때가 오더라도 섭섭해 하지 마시고, 그 친절하고 상냥한 손길로 절 이끌어 주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주여, 저는 기다립니다. 고독의 길에서 주의 뜻을 깨닫고 그 풍성하신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가 끝까지 인내하며 이 고독의 좁은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