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게 하라


오 하나님

 당신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르도록 허락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부르라고 명하시나이다

 그리하여 제 속에는 감사와 사랑과

 무엇보다도 든든한 신뢰가 샘처럼 솟아 흐릅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이토록 선하시니

                                             저 또한 남들을 선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군요

                                                                    -견딜 수 없는 날들의 기도 中

숨기겠느냐

모처럼의 시간을 내어 일주일 간 영성여행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 길을 떠났다. 교단의 교역자 수련회에 참석하는 이틀, 무창포에 성전을 건축하고 설립예배를 드리는 목사님의 교회에서 이틀, 나머지 이틀은 한국의 호세아 성자로 불리며 철저하게 영성의 길을 가셨던 이세종 성자의 기도터가 있는 전남 화순에서 보내는 이틀의 시간을 잡았다.

길을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풍경을 마주하고 또 지나 보내면서 하늘 아래 나 홀로 주님만 대면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기쁨은 늘 익숙한 자리를 떠났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수련회기간 동안은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주님과만 대화하면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늘 대화를 하게 되고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 성정인지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주님은 사람들을 통해 언제나 무언가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모두가 떠난 그 밤에 사택에 머물며 주님만 붙잡고 교회당을 건축하신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자유함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평강을 보았다. 사람들의 시선과 질투, 인간으로서 느끼는 한계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성전건축이라는 이름 앞에서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이지만 사람의 관계 안에서, 세상의 질서와 물질 안에서 해결해 가고 건너가야 하는 과정인지라 무릎이 꿇어지고 마음이 낮아지는 비움의 경험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욕심이 들어간 단순한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전적인 의지로 나아갈 때 그것은 주님의 사업으로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 됨을 알고 나누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칭찬과 여러 말들이 제겐 안 들려요. 그저 여기서 주님과 저만의 깊은 시간을 잘 가지려고 해요. 그것만 잘하고 싶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서 행복해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계획하셨고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아브라함이 아끼는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었고 의(義)와 바른 도리를 행하게 하려고 선택하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도 불의에 대한 경고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들 앞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숨기지 않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숨기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유하지 못하다. 숨기시는 하나님이라고 여기고 나면 우선 내 뜻대로 숨긴 일들을 짜 맞추고 미리 예상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다. 어디서라도 드러내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데 내가 듣고 싶고 인정하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는 언제나 얼마간의 거리를 두게 된다.

이것도 저것도 그리고 이전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주님은 숨김없이 보여주시고 의논하시면서 알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늘의 바람이 임의대로 움직이지만 그 바람의 느낌을 붙잡고 호흡하는 것은 나다. 주님이 하시지만 나와 주님과의 사이에 숨김이 없는 사랑의 소통이 진실하게 나눠진다면 한층 더 주님과 살게 되겠지. 바람을 만지고 햇빛을 느끼고, 나뭇잎의 떨림을 보면서, 나를 외면하는 누군가의 냉정한 등과 마주하면서, 내가 속한 단체에서 비껴나 홀로 낯선 길을 가는 외로움 속에서도 주님은 숨기지 않고 말씀하고 계시는 중이다.

낯설고, 외롭고, 지치고, 아파서 무뎌진 가슴 한켠에서 아주 진실하게 다가오시는 중이시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인정하면서 진실하신 주님과 마주하면 된다. 성난 사람의 날카로운 비수 같은 화살 속에도 주님의 숨기지 않으신 뜻이 있음을 잊지 말자. 한숨이 내려앉는 내 무릎에도, 사람들의 판단과 오류 속에도 주님의 숨기지 않으시는 뜻이 있음을.

이공님의 기도터에서

이세종 선생님께서 생전 기도하시던 그 장소에 이공님의 기도터라고 쓰여진 팻말과 나무 십자가가 소박하게 걸려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기도하며 밤을 새워 보리라. 결단하고 방안의 기도터로 들어갔다.

곰팡이가 가득한 천장, 일년 쯤 버려진 듯 놓여진 이불 몇 개와 낡은 가구. 벽지 곳곳에 쓰여진 부활, 자업자득, 브니엘, 완성 등의 글자들. 춥고 깨끗하지 못하여 기도가 될까 싶은 환경적인 부산함들. 그러나 누구도 없는 고요함과 적막함. 그리고 성자의 채취가 느껴지는 기도의 맛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보니 그곳은 깊은 울림이 있는 곳이었다. 자유하지 못한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자 우르르 고요 속으로 빠져 나갔다. 진실하게 인정하자 어둠과 함께 어디론가 맑은 평안이 다가왔다. 추위와 싸우며 밤을 지새우시던 이세종, 이현필 성자들의 마음속에 있던 치열함이 아주 작은 흔적으로라도 내게 머무는 것 같아 마음에 감격이 울컥함으로 올라왔다. 꼿꼿이 앉아 밤을 새워도 그 자리가 좋아졌다.

이세종 성자는 환난과 고난을 기뻐하였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요, 죽는 것이 도리어 사는 것이라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를 굳게 믿었다. 그에게는 생활의 어려움, 가정의 고난, 육신의 질병, 정신적인 고통 등이 계속되었다. 그는 “사람들은 자기 살림에 특별한 축복이 없을 때에도 재앙을 당하지 않는 것이 곧 복인 줄을 모르고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믿고 당장 무슨 큰 복이 쏟아져 내려오지 않더라도 재앙이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복인 줄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난을 자원해야 한다. 고난을 일부러 벌어서 겪으면 값비싼 경험을 얻게 된다. 그런 이는 앞으로 시험이 닥칠 때 넘어질 위험성이 적다.”

“이 세상에서 나 하나를 살리려면, 남을 밟고 그 위에 내가 올라서지 않고서는 어렵다. 남을 넷, 다섯 죽이고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이런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면 항상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고 자기에게 강한 것, 내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게 살아야 한다.”

이세종 성자는 이사야 53장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 계시는 동안 성부께서 그를 어떻게 대우 하셨는가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남루한 옷 그대로 묻으라고 부탁하면서, “좋은 옷 입혀 땅에 썩히면 죄가 되오. 나의 떨어진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요”라고 하면서, 1942년 음력 2월 추운 겨울에 그토록 사모하였던 주님의 품으로 가셨다.

무엇보다도 든든한 신뢰

안락함에 익숙한 내 자신의 삶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순간들이었다. 당장 추위와 배고픔을 주신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고난과 손잡으며 주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화순의 등광리를 떠날 때, 내 뒤를 따라오던 이세종 성자의 음성이 있었다.

어려운 길로 가십시오. 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이끄시는 대로 가십시오. 가면 주님의 뜻이 거기 있습니다. 결과를 보고 길을 가지 마십시오. 주님이 이끄시면 가십시오. 그곳에서 주님의 착하신 마음이 또 다른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신앙의 길이 이다지도 행복한 것임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어디에 가도 그곳이 주님이 계신 곳이기에 행복한 것이라는 기쁨을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 한분만을 붙잡고 가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게 신앙생활이다.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그 속에도 주님이 계시고 나를 향해 손을 내미신다. 제도와 규칙, 사람들의 틀, 오랫동안 그래왔던 관습과 겉으로만 엄격한 형식, 그리고 넘어가면 안 되는 줄로 그어진 선. 그곳을 넘어 서서 무엇보다 든든한 신뢰를 주시는 주님의 손을 잡는 일은 낯선 자유와 한참을 싸워야만 한다. 다만, 지금까지 보다, 지금보다 더 철저한 나만의 영성생활이 없으면 든든한 신뢰의 줄은 닳아지고 약해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주님은 고난 속에, 절제 속에, 그리고 철저한 자기부정 속에서 거룩한 미소를 더 환하게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누려야 되는 많은 것들, 사람들, 풀고 엮고,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할 많은 이유들을 자유롭게 해주자. 너도 나도 우리도 다 보내고 주님만 머무시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든든한 신뢰의 우리 아버지만 내 곁에 꽁꽁 숨겨두고 깊게 깊게 더 사랑하자.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