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선물

때 아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요즈음이다. 복잡한 마음이다. 내가 왜 이럴까, 푸념 섞인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방황은 언제나 끝날까 하는 의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감하던 어느 날, 작은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있었다.

마음이 복잡하던 오전이었다. 여러 일들 가운데 분주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어느 한 분이 떠올라 연락을 드렸다.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다가 그분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듣게 되었다. 고백하듯 과거를 털어놓는데 그 아픈 마음이 내게도 전달되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주변 가까이 계신 분이지만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안타깝고 마음만 아팠다. 전화를 끊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듯 기도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도와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손은 일을 하고 있는데 맘은 온통 그분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오전부터 작업을 하느라 힘이 고갈되고, 걸려온 전화로 인해 지쳐서인지 심하게 허기가 졌다. 간단한 점심으로 라면과 삼각 김밥 하나를 사 왔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도 정신은 온통 한 가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내게서 너무 멀리 계신 느낌이 들어 슬픔이 밀려왔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혼자 먹는 컵라면은 얼마나 조합이 잘 맞는지, 진한 쓸쓸함을 보태주는 것 같았다. 머리를 숙여 라면 한 젓가락을 들어 올리자 눈물이 핑 돈다. 그 순간 왜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멀리 계신지, 왜 외톨이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지 해답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알겠어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늦은 사춘기를 맞아 풀리지 않는 시험지를 들고 하나님께 시위했었다. 하나님은 왜 제게 이렇게 잔인하신지, 왜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 않는 건지 꼭 버림받은 것 같아 풀죽어 기운도 없었다.

모든 이에게는 주님이 주신 각자의 은사가 있고 그것을 통해 주님 일에 헌신하고 봉사한다. 무능력한 나 역시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 있다. 다른 분들을 기도로 섬기는 사역이라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주신 것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다. 주신 분이 완전하시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든 그것은 반드시 좋은 것이리라 여겼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점점 버거워져 큰 산이 되어버렸고, 결국 최후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는데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이에요. 전 이것 때문에 아프고 불행해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내려놓을게요. 그 대신 앞으로 더 열심히 살도록 노력할게요. 지금까지 해이해졌던 영적 생활도 잘 하도록 할게요. 그러니 제 요청을 받아주세요.”

하나님께서 날 이해해주실 거라며 나름 정리를 하고 나니 처음에는 마음이 편안했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것이 떨어져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기도생활과 성무일과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이 더 꼬이는 것만 같았다. 내 영혼은 길을 잃은 듯 방황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다들 어려워보였다. “그래, 역시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지. 하지만 신중하게 결정하고 내린 결론이니까.” 내 이성과 마음과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차가워져갔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은데 뭔가 큰 장애물이 있는 듯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따른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도 않고, 내 뜻을 굽힐 수도 없었다. 다시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고통의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을 새삼 깊이 깨닫게 하셨다.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감당하노라면 불쌍하고 연약한 나를 보듬어주시고 이해해주시고 돌봐주심을 왜 이리 늦게 알게 된 것일까?

눈물의 라면을 억지로 삼키며 주님 앞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한 마음이 앞섰지만, 주님은 오히려 다시 받아주시며 안심하라는 평안의 마음을 주신다. 측량 못할 주님의 사랑은, 어리석은 나를 오래 기다려주시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시며 토닥이신다. 아무 맛도 알 수 없는 눈물의 라면을 먹는데, 마음은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 샘솟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소리치며 울고 방황했지만, 결국 내 자리는 주님 앞이다. 주님이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은사는 나를 성장시키고 다른 이를 섬기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대로, 이끄시는 대로 나는 다만 따를 것임을 다시 결단한다. “주님, 말하지 않아도 표현 다 하지 못해도 제 맘 아시죠? 사랑합니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