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따르는 생활

나는

그래서 사랑하고

그분은

그래도 사랑하시고

-조희선 ‘차이’

 

가장 있는 일을 통해

우리가 가장 사는 방법은 자신이 가장 있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빌라의 데레사 말처럼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 것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생각이 새로워야 하고, 뒤따라 새로운 행동이 시작되겠지요. 진부한 삶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란, 하루가 내일도 역시 다를 없다고 생각되면 난감한 일이며 지루한 삶이겠지요. 빅터프랭클의 말한 대로 사람은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살지?”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지금 당장에 습관처럼 틀에 박힌 삶에 제동을 걸고 구멍을 내어 세상에 다시없을 신선한 바람을 들이마셔야 하는 것이지요. 바람이 성령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우리 삶은 거룩함의 영역에 불쑥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번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었던 같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아주 소박하게 신앙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반갑습니다. 그들은 평신도이고, 주부이고, 중년이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묵묵히 삶을 추스르고 겸손하게 행동합니다. 내가 그들을 모르기에,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사람들이며, 유리잔처럼 가볍게 관계가 깨어질까봐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상식적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속살을 들추면 겹겹이 상처를 안고 있지만 엄살을 부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너무 바쁘고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엔 재빠르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는 인색하기에 소통(疏通)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마음을 의탁하려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활인이기에 신앙도 구체적이고, 자녀를 돌보듯이 이웃을 배려하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대의명분보다는 실제적인 필요에 응답할 있어야 ‘거룩함’도 관념성을 벗어버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부실한 저를 항상 긴장시키곤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칫하면 빈말을 내뱉기 쉽습니다. 저도 모르게 말장난을 하거나 생각에 취해 생활하는 자의 마음을 돌보지 못합니다. 몸은 고요히 있으나 생각은 부산합니다. 그래서 한사코 끊임없이 의식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려 다시 생각해 보라고 다그칩니다. 거기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라 이르는 것입니다.

복음만이 그리스도인의 규칙

복음이 무엇인지 확인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자신 아니라 가족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바실리오는 부모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았는데, 특히 할머니는 그에게 교부 오리겐의 정신으로 무장된 신앙을 전해주었답니다. 오리겐은 26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흑사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오로지 그리스도인들만이 도망가지 않고 도시에 남아 신자 비신자 가릴 없이 병자들을 돌보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승과 교사 노릇을 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들은 세상 안에서 천상의 등불처럼 그들 속의 낯선 사람들로 살고 있다. 이처럼 바실리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복음대로 살아가는 ‘천상의 등불’로 남아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니케아종교회의를 둘러싸고 분열되어 있었으며 교황과 황제를 둘러싸고 주교들은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실리오는 이를 두고, “교회는 바다에서 함대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관심은 안중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바실리오가 제시한 것은 ‘수덕적 복음주의’였지요. 바실리오는 고요한 곳에서 복음을 따르는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모형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마태오 복음과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중심으로 1542절을 골라내어 「규칙서」를 만들었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란 어떤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바로 사랑에 의해 활기를 갖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거룩한 성경의 진리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웃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자신의 이익을 찾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과 육신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날마다, 순간마다 깨어있는 것이고,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완전한 상태 속에 있는 것이며, 미리 없는 어느 어느 시간에 갑자기 주님이 오실 때에 깨어 있는 상태로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처럼 바실리오는 복음만이 그리스도인의 규칙이며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나이 마흔쯤 되면, 그동안 땅의 삶에 몰두하였다면 한번쯤 하늘을 바라보고 진지하게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앙이 그저 장식품에 불과한 것인지, 아님 삶의 중심에서 빛을 내며 삶을 힘차게 이끌어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갈릴리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자신도 기쁘게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대는 갈망 하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