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고요가 필요한 시간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용어 중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궁금해 하지 않는 내용도 자신이 먼저 나서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TMI 현상이 만연하는 이유는 SNS의 영향이 크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에 혼자서 소화시키지 못하는 감정들을 올리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감정들을 표현을 그대로 배출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를 기대한다. 최근에는 ‘브이로그(Vlog)’라는 컨텐츠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 역시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여 보여주고 공감을 유도하며 자기애를 부추기는 장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최근 20-30대 세대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사실이다. 자신을 한껏 꾸미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사람들에게 ‘좋아요(Like)’를 무수히 받는데 왜 내면에 평화를 찾기 힘든 것일까? 나의 감정을 마음대로 배출하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왜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는 청년들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옛 사막 구도자들의 일화이다. 세 명의 구도자가 있었다. 그들은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전념했다. 한 친구는 “평화를 만드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 감동 받아 갈등하고 반목하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또 다른 친구는 병자들을 고치고 돌보는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마지막 친구는 그저 광야에 가서 조용히 살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자기 길을 찾아 흩어져 세월이 흘렀다. 첫 번째 친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를 심는 일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몹시 절망에 빠져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친구 역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쳐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광야로 간 세 번째 친구를 찾아 나섰다. 그는 사막에 암자를 짓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두 친구는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하소연하며 암자에서 홀로 얻은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릇에 물을 따르면서 그 안을 들여다보라고 하였다. 그 안에는 혼탁한 물이 출렁이고 있었기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다시 그릇 안을 보게.” 그릇 안을 다시 들여다 본 두 친구는 물이 고요해지고 맑아져 그 위에 자기들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세 번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가운데 머무는 이는 불안과 혼란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네. 그러나 내적 고요를 지키며 사막에 거한다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것일세.”
언젠가부터 나에게도 마음의 혼란을 덜어내기 위한 습관들이 생겼다.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즉시 태블릿 PC를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메신저를 보내거나, 마음에 드는 내용을 검색하며 마음의 혼란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습관들이 생긴 후 이상하게도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작은 일에도 어쩔 줄 몰라 하며 평화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세상과 어떠한 소통도 할 수 없었던 때에 오히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시간들이 훨씬 많았음을 떠올려보면 세상의 소리와 육신의 쾌락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마음의 평화는 멀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던 때를 보면 온전히 내적 고요 가운데 ‘홀로’ 있던 시간들이었다. 모세는 광야에서 외롭게 연단을 받은 이후 ‘가시나무 떨기’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았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주야로 하나님과 대면하며 깊 은 회개의 시간을 가졌다. 빛나는 광채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은 식음을 전폐하고 3일 동안 고독한 시간을 갖는다. 만약 이들이 사람들 가운데 둘러싸여, 세상과 제한 없이 접촉을 할 수 있었다면 결코 하나님과의 진한 만남은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들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홀로 머무는 사막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곳에서 내면의 죄성과 정욕의 시끄러운 요구들, 그 요구를 부추기는 세상 쾌락의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 세상에서 듣는 백만의 소리보다 더 나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은 성령의 세미한 소리이다. 그 생명의 소리를 듣기 위해 오늘도 하나님 앞에 고요히 머물자.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