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구하라

지혜가 없다고 하는 표현은 고쳐야 된다. 지혜가 종종 부족할 때도 있지만, 지혜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하고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지혜는 누구나 다 있다. 어떤 사람은 50퍼센트, 어떤 사람은 90퍼센트, 어떤 사람은 80퍼센트, 어떤 사람은 20퍼센트, 다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가서 도와줘야 되는 상황인데 약속이 있어서 못 가게 되었을 때, “다음에 꼭 가겠습니다.” 금방 가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으니까 꼭 가겠습니다, 이렇게 해놓고서 안 가서 펑크 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지혜롭게 표현을 잘해야 된다는 것이다. 꼭 가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하면 지켜야 된다.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이렇게 하면 못갈 수도 있다. 그런데 꼭 가겠다고 하고 안 가면, 또 그런 것이 자꾸 거듭되면 실없는 사람이 된다. 지혜롭고 겸손하게 말하는 법을 자꾸 배워야 한다.

어쨌든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상대방에게 위로가 되게 하고, 좀 기대해보도록 하는 것은 괜찮다. 어떤 경우에는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라고 사과도 해야지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말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정말로 원수처럼 되기 쉽고, 여러 가지 손해를 많이 보게 된다. 죄송하다든가, 미안하다든가, 부끄럽다든가, 송구스럽다던가, 이런 단어는 자주 써야 한다. 우리의 생활을 보면 도가 지나친 표현들이 많다. 특히 누군가 일부를 표현했는데 전부가 그런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라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서 이야기한다면, 거기에 맞춰서 성경말씀을 동원할 수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면 영적지도자의 견해를 참고할 수도 있다. 또 기도하면서 자기 맘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초점이 예수님 중심으로 사느냐 안 사느냐, 이것이 언제든지 의식적으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이러한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한다. 그것은 생각지 않고 아집이냐 아니냐만 가지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부모님이 지금 큰 고생을 하고 계셔서 도와주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혈육 간의 애정에 끌리는 것이고 아집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어떻게 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8:22)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돌아다니고 있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니던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을 모든 환경에 다 적용하면 모순이 나타나게 된다. 두 벌 옷이나 전대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집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모두 해당이 되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우리는 말씀을 지혜롭게 잘 생각해야 한다.

집안에서 살고, 부모님을 잘 공경해야 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석구석 다양하게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지혜롭게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만나고 싶고 대화 나누고 싶어서 찾아간다든가, 아니면 음식이라도 잘해서 부모님 몸보신이라도 해드리고 싶은 육적인 마음을 가지고 찾아간다든가,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초상이 났다든가, 아니면 교통사고가 나서 위독한 상태에 있다든가, 영혼이 구원받으셔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니까 그 영혼을 돌봐드려야 한다든가, 그밖에도 특별한 경우에는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신약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그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가야 한다. 그 영혼을 구원하고, 천국에 들어가실 수 있도록 돌봐드리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가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지식

사람들의 지식은 불완전하다. 모두 다 완벽한 깨달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완전 속에 그냥 놓아두신 것이며, 완전하신 분은 예수님 한분 밖에 없다.

깨달은 것들이 나중에 보면 엉터리로 깨달았구나!’ 이런 것이 굉장히 많다. 그 순간에는 완벽한 깨달음으로 생각하고 너무너무 기뻐하면서 설교도 열심히 하는데, 1년이나 2년 후에 보면 그때는 왜 이렇게 엉터리로 해석했지?’ 그런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자기만이 최고라고, 자기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 너무나 엉뚱한 것이 많다. 그 순간 성령의 감동은 있었지만, 깨달음은 불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보르그의 천국과 지옥이란 책도 보면,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사건들을 전부 영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이나 3차 세계대전, 이런 것은 땅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이미 다 영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책에 써놓았다. 천국 안에서 보고 들은 것은 정확한 것만 뽑아내야 되는데 성경을 해석한 것은 엉뚱한 해석이 많다.

토마스 쿡이 쓴 신약의 성결이라는 책도 보면 성경을 잘못 인용해서 엉뚱하게 해석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렇게 불완전하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높이 성장하지 못하고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한 분들이 써낸 책들은 더 문제가 많다고 봐야한다.

영에 속한 사람은 워치만 니가 두 번째 연단과정에서 쓰신 것인데, 당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거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그동안에 자기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자아가 깨어질 때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보면 또 전혀 다르다. 체험적인 내용들이 다른 사상들에 의해서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완전무결한 사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신 내용들은 다 완전하나 성경을 해석해서 증거 하시는 분들의 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불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도 모르는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축복을 전하라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