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둘레길
언제부터인가 마을마다 둘레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관광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달동네에도 복잡한 도심지에도 한적한 농촌에도. 주민들의 마을 사랑도 얻고 건강도 챙길 목적이지만 특히 산언저리에 만들어진 둘레길은 호젓한 숲길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값없이 받는 특별한 선물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편한 차림으로 가볍게 나서는 마을 둘레길은 말없어도 좋은 친구처럼 정감이 있다.
이곳 당정마을도 의왕시와 군포시가 접한 오봉산을 두르는 둘레길이 생겼다. 그 길이 다듬어지기 전에는 정상으로 올라 내려오는 숨 가쁜 길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여유롭게 돌아가는 야자매트길이 열렸다. 가는 길엔 산뜻한 정자도 있고,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도 있고,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도, 깊은 숲속 운동기구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거다. 청설모나 다람쥐도 종종 보이는데 이번엔 가까이 고라니가 달려 오르는 것도 보았다. 어떻게 이 작은 동산에 저런 아름다움이 있을까.
둘레길은 이름만으로도 여유롭고 푸근하다. 버킷리스트의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성 야고보사도의 전도길)만이 아니다. 모든 둘레길은 숲이든 들이든 바닷가든 다 그리운 길이다. 방랑벽이 있어서일까. 인간에게도 애초에 심겨진 연어나 제왕나비의 신비로운 생체시계가 있는 걸까.
성경엔 분명한 이유를 밝혔다. 흙으로 빚어진 육체 속에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기에 영혼은 늘 하나님을, 그 하나님 나라를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을 믿던 안 믿던 영혼 속에 “본향”을 찾는 그리움이 내재된 귀소본능의 존재,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천천히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호젓한 길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길 끝에서, 그 길이 이미 마음속에도 있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진작 심어놓으신 여호와의 산 둘레길을.
둘레길에서 맑은 공기와 산새의 경쾌한 기운을 마시며 마음의 둘레길을 걷는다. 땅의 길을 걸으며 동시에 하늘의 길을 걷는다. 첼로의 현처럼 삶의 길과 나란히 겹쳐진 내세의 길을 걷는다. 성큼성큼 육체 안의 영혼이 함께 걷는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영혼의 찬양소리도 들려온다. 숨이 차오르면 힘껏 불순과 불경을 내뿜고 주님의 긍휼과 자비의 은총을 맘껏 들이쉰다. 오직 주님께 고백과 감사만을 드릴 수 있는 둘레길은, 실은 찾으면 어디에나 있다.
내 마음의 둘레길은 그래서 경이롭다. 천성까지 이어진 그 길은 경이로움을 상실한 영혼이 걸어야하는 비아돌로로사의 길이다. 길이 되신 예수님을 죽인 비정과 오만을 탄식하며 걷는 길이다. 구레네 시몬처럼 예수님의 힘겨운 십자가를 함께 지며 걷는 헌신의 길이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고통에 참여하며 버려짐을 달게 받는 사랑의 길이다. 이 길 끝에 영광이 있다. 이 길 끝에 영광의 주님을 뵙는다.
둘레길에 바람이 스치고 낙엽이 앞서 간다. 그러나 마음의 둘레길을 자주 걷는 이에겐 봄날의 새빛처럼 새날의 소망이 그 길에 있다. 영혼 속에 오신 성령의 기쁜 동행하심이 내 마음의 둘레길 위에 있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