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표가 되리라
출근길에 30분쯤 걸어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아주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한 손에는 상추가 가득 담겨있는 검은 비닐봉지와 또 다른 한 손에는 하얀 종이가방을 들고 계셨다. 바람이 제법 부는 탓인지 보라색 조끼와 태극문양이 그려진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셨는데 손이 투박해 보였다. 버스는 25분 후에야 도착한다고 운행표에 기록되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배차 시간이 길어진 탓이다. 정류장에 앉아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현금으로 버스요금이 얼마나 되냐고 여쭈어 보셨다. “아, 카드로 찍고 다니다 보니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1500원일 거예요.”라고 답변을 하면서 다시 확인 차 가방을 열어 폰을 꺼내려고 했다. 가방의 지퍼 문을 열자 작은 주머니 안에 청소년전도지와 「작은 나의 고백」이라는 소책자 한 권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순간 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에게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 동네 안사시나 보네요. 차가 운행표에 표시 된 것보다 조금 더 빨리 올 때도 있어요. 이곳은 버스 정류장이 조금 들어간 곳이라 미리 일어나 있어야 해요. 아니면 그냥 쏜살같이 지나가거든요. 아주머니, 이 책 한 번 읽어보실래요?”라면서 책을 건네자 아주머니가 책을 한두 장씩 쓱쓱 넘기셨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이 책을 이렇게 주어도 돼요?”라고 되물어오셨다. “그럼요. 전도용 책자에요. 돈을 많이 벌려고 성인만화를 그렸는데, 큰 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다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온 분의 이야기에요. 혹시 까치 만화를 그렸던 이현세 작가님 아세요? 그분의 수제자였던 분이에요.”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주머니는 잘 모른다고 하시는데, 말투가 참 온화하고 부드러우셨다. 이에 더 용기를 얻어 열심히 전도를 하는데, 아주머니가 다행히도 경청을 해주셨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치매도 약간 오셨고 몸도 불편하신데요.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게 아닙니다. 저희 오빠는 젊은 나이에 천국에 갔는데, 우리의 인생이 내 뜻과 계획대로 잘되지 않더라고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주머니도 “그렇지요.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지요.”라며 맞장구를 치셨다. 가까운 교회나 혹시 지인들 중에 교회 다니시는 분이 계시면 함께 교회를 다니시라고 권면을 드렸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차가 도착을 했다. 아주머니는 나보다 한 정거장 앞서 하차를 하셨다. 내리시는데 꾸벅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하나님 아버지, 저분이 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가난한 마음을 부어주소서.” 점점 멀어져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화살기도를 드리는데, 아주머니도 인생에서 뜻하지 않는 굴곡을 많이 만난 분처럼 느껴졌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감동과 감탄과 기쁨의 환희의 느낌표(!)를 찍을 때도 있지만, 생각지 않는 장애물이나 역경을 만날 때 물음표(?)를 던질 때도 참 많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 아픔과 슬픔과 도탄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울음표”로 나아가게 된다. 돌아보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은혜이고 복이다.
「작은 나의 고백」의 저자 최철규 집사님도 한때는 성인만화를 그리며 남부럽지 않게 사셨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모태신앙을 가졌던 그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짝을 하고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많은 돈을 벌지 몰랐지만,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가는 그의 영혼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슴이 조여 오며, 가끔씩은 혼절을 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결국 병원의사 선생님이 진단을 내리기를 ‘기흉’이라는 병명이 떨어졌다. 수술을 해도, 수술을 하지 않아도 살아날 가망이 희박했다. 그는 ‘왜 내게 이런 일이?’라며 수없는 물음표를 하나님께 던지다가 결국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하였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대로 죽으면 자신은 도저히 천국에 갈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께 한번만 살려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울며 목 놓아 주님을 부르며 기도를 하였다. 수술하기 전 불과 5시간 전이었다.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엑스레이를 다시 찍었다. 그런데 그때 레지던트 의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담당 의사선생님께 이 사진을 보라고 내밀었다. 놀랍게도 찌그러진 가슴이 펴진 상태였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약물치료로 가능하게 되었고, 병상생활을 하며 다시 성경책을 붙들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던 중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시3:4)는 말씀에 깊이 감동이 밀려오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왔다.
이후 여러 가지 유혹을 뒤로한 채 경제적 궁핍과 손가락이 파열되는 큰 고통을 이겨내고 만화 「천로역정」을 6년 만에 세상에 내어놓았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해주며, 그의 간증에 은혜를 받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지금도 물질적인 어려움과 고통들이 따르지만 그는 이전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리라고 결단하였다. 그 증거로 예전에 그렸던 성인만화를 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과거 죄의 흔적들을 보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계시다.
인생에서 뜻하지 않는 굴곡은 은혜의 상승곡선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생각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계획이 틀어져 낙심과 절망을 하지만, 결국은 그 길이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는 길임을 숱한 마음고생과 어려움들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의 무릎을 꿇는다. 물음표에서 울음표로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는 “매일 마주한 슬픔을 견뎌 나가며,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네.”라는 찬양 가사처럼 매일 마주한 슬픔을 인내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익은 열매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넓은 길로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좁은 길로 우리를 이끄시면서 생각지 않는 아픔과 고난을 겪게 하신다. 하지만 그곳에 은혜가 있다. 하나님 앞에 진실로 울지 않으면, 고통 앞에 진실로 신음하는 시간의 밤을 많이 보내지 않으면 주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아픔과 고통과 번뇌와 씨름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더욱더 성숙한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에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것은 참 은혜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복이다. 이를 통해 광야 여정에서 우리를 겸손케 하시고, 눈물의 빵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하신다.
주님 앞에 서는 우리 모두는 고백할 것이다. “주님, 이제야 제가 알았습니다. 이 많은 인생의 물음표를 당신의 긍휼과 사랑으로, 울음표로 뒤바꾸시는 놀라운 반전을 이루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요.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정말 은혜였습니다. 할렐루야.”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우리 안에 계속 이루어지길 소망해본다. 그곳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리라.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