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갈망하라


식물은 개화를 갈망한다. 겨우내도 말할 것 없지만, 봄을 통과하면서는 더욱 애태워한다. 봉오리가 터지는 아픔 정도는 갈망 속에 녹아 오히려 환희가 된다. 허나 개화를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모든 힘을 한 시점으로 모을 수 있는 절실한 준비이다. 이호우 시인은 숨죽이며 노래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갈망하다 죽어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도 이렇게 적었다.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 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시기적절하게 시흥영성수련원에서 열린 “제7차 참목자 영성 집회”에서 초청강사인 유해룡 교수는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려는 것은 안주하려는 마음이다. 무언가 완전히 성취한다면 더 이상 갈망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완전과 연약을 주셔서 끝없이 갈망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인간은 날 때부터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요, 종교 철학자였던 석학 파스칼의 말과 일치한다.

“우리 안에는 어느 누구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오직 그곳을 설계하시고 심으신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그 분을 맛보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갈망하리요.”라고 결론지었다.

그렇다. 참된 신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갈망한다. 빈들이나 산에서도, 궁궐이나 옥중에서도 진짜 신앙인은 하나님을 갈망한다. 천국은 그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모여 구성되는 나라이다. 천국의 빛은 하나님 보좌로부터 그것을 바라는 모든 존재에게 흘러내리는 것이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21:22-25).

그러므로 영적 목마름을 갖고 꽃봉오리가 개화를 꿈꾸듯,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끊임없이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으리라.

우리 속 공간을 잡된 것들로 채우며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은 하루아침에도 무너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품은 이들은 끝없이 진보하며 날아오른다. 하나님의 전적 은총인 거룩성이 그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꽃봉오리가 터진다. 주를 찾기에 갈급한 영혼들이 하늘을 향해 터트리는 향연이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