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1985년에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트니스”가 상영되었다. 아미쉬의 삶을 주제로 한 인상 깊은 영화였다. 이들은 전기, 전화, 자동차 없이 살아가고 있다. 검소하고 겸손하고 근면한 사람들이다. 모두를 버리고 오직 재림하실 예수님만을 기다리는 공동체이다.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스위스 형제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신학 노선을 달리했다. 먼저 유아세례를 반대했다. 세례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 세례를 주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유아세례를 받은 이들은 다시 재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례에는 온전한 고백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재침례파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미쉬 성도들은 침례교, 감리교, 모라비안 등 개신교파의 교역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시련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에서 이탈하기도 하고, 가혹한 박해를 피해 스위스 산속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역까지 갔다. 스위스 산이 잘 정돈된 것은 이들이 개간한 덕이다.

1693년 재침례파 지도자로서 알자스로 와서 살던 야곱 암만의 이름을 따서 “아미쉬”라는 이름이 생겼다. 야곱 암만 목사는 1693년에서 1712년까지 독일과 프랑스 접경 지역인 알자스에서 사역했다. 세례 문제로 극한 대립을 하게 되었고, 박해를 받으면서 함께하였던 이들은 이후 메노나이트, 아미쉬, 후터라이트 세 부류로 나누어졌다.

‘메노나이트’는 세상과 타협하면서 세상 문화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자동차도 타고 다니고 동시에 전도도 한다. 아미쉬는 자동차도 없고, 공동체 안에서만 생활한다. 결혼도 공동체 안에서 해야 하고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그러나 가정별로 사유 재산이 철저하게 인정되었다. ‘후터라이트’는 사유 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공동생활을 한다.

이 셋 중에 가장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사람들이 아미쉬이다. 개혁에 대한 아미쉬의 관심은 교회의 구조나 제도가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교회의 역사에서 실종되었던 초대 교회의 신앙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순결한 공동체인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오직 오실 예수님만을 기다리며 거룩하게 살자는 것이 핵심이다.

 

아미쉬의 생활

전기, 전화, 컴퓨터, 텔레비전, 라디오, 냉장고, 가스레인지도 없다. 24시간 손만 대면 나오는 따뜻한 물도, 수도꼭지도 없다. 난방도 안 된다. 커다란 무쇠 스토브에 나무를 넣어 떼는 것이 유일한 난방이다. 미국의 모든 가정이나 건물에 깔려 있는 카펫도 없다. 마을 전체가 아스팔트 없는 흙길이다. 자동차는 물론 기름을 쓰는 농기계도 일체 없다. 대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순종과 겸손, 순결과 단순 그리고 거룩한 삶을 다시 오실 예수님만 기다리자는 것이 아미쉬의 생활 지침이다.

차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차를 타고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마차를 타고 가면 1시간 걸립니다. 사람들은 차 대신 마차를 이용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피상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차를 갖게 된다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소비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딱 한 번만 시내에 다녀온다는 것을 전제로 계산하면 그 생각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막상 마차를 자동차로 바꾸어 보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시내에 나가기 훨씬 쉽기 때문에 더 자주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곳을 방문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에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허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지 않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에 가혹한 탄압을 받았으나 절대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전혀 대항하지 않으신 것 같이 그대로 당하며 살았다.

그들은 ‘오래된 것이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에 편리한 물건들을 거부하고 옛 것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수도 대신 우물을, 가스레인지 대신 화덕을, 냉장고 대신 흙으로 지은 창고를, 환한 전깃불 대신 등유 램프를 이용하고 있다.

 

아미쉬의 거울

장식품을 달지 않는다. 목걸이나 귀걸이도 하지 않는다. 용모 가꾸는 것을 금하기에 여자들은 거울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아미쉬가 유일하게 보는 거울이 하나 있다. 바로 「순교자의 거울」이다. 이는 아미쉬의 고난과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조상들이 박해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왔는지 세밀히 알려주는 역사책이다.

순교사인 「순교자의 거울」은 백과사전처럼 묵직하다. 모든 가정은 성경책과 함께 이 역사책을 집 안에 두고 성경과 더불어 수시로 꺼내 읽는다. 조상들이 흘린 피로 얼룩진 이 「순교자의 거울」은 아미쉬들의 일상생활을 경건하게 만들어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종교 개혁 당시에 파문된 재세례파 아미쉬는 체포되면 화형에 처했다. 이곳에 실린 당시의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더크 윌렘스가 재세례파 성도들을 사냥하여 죽이려는 인간 사냥꾼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무사히 건넜는데, 뒤를 보니 얼음이 깨져서 자기를 쫓던 사람이 호수에 빠지고 있었다. 추격자에게서 완전하게 벗어나 멀리 도망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뒤로 달려와서 호수에 빠진 추격자를 살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추격자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그를 체포했고 결국 화형을 당했다. 1569년 북 유럽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들은 성경을 믿음의 토대로, 「순교자의 거울」을 생활의 토대로 삼고 있다. 나도 이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전기도, 자동차도 없이 지극히 검소한 생활이다. 모두 530분에 일어난다. 가축들에게 밥을 주고 젖소에게 가서 젖을 짠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가족 예배를 드린다. 성실하게 일한다. 질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 시장에 내보내고, 그 돈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아간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있는데, 자녀들을 모두 아미쉬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아미쉬가 된 자녀들은 모두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를 잘 섬기고 마을 어른들을 잘 모신다. 그러면 가장 존경받는 아미쉬가 된다. (계속)

강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