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처럼

올리브 나무는 성경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나무 중 하나이다. 올리브는 평균 천 년을 살고 예루살렘에는 이천 년 이상 된 것도 있다고 하니 그 생명력이 놀랍다. 무엇보다도 기름으로 인해 동방에서 아주 귀중하며 완전히 자란 나무는 약 500kg의 기름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 첫 번째로 짜낸 기름은 성전의 등불을 밝히는 데 사용했다. 올리브나무는 돌이 많은 지형을 좋아한다. 그래서 부싯돌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한다.”(32:13; 29:6)는 표현은 이것과 상관있다. 올리브 나무는 돌밭에 뿌리를 내리고, 뿌리가 석회암 암반에 닿으면 그것을 녹여 뚫고 결국에는 수분을 찾아내어 무성하게 자란다.

올리브가 돌이 많은 지형에서 수분을 찾아 깊이 뿌리를 내리듯, 굽이굽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찾아 나서는 길이 주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과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넓고 풍요로운 길은 도리어 우리를 안일하게 하며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사단은 편하고 쉬운 길로 나오라고 하지만 주님은 낮아짐과 수치와 비방과 모욕의 길을 걸으셨다. 가끔 주님을 따르다가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장소나 환경으로 마음이 연약해질 때가 있다. 모든 공급이 차단되는 것 같고, 하나님마저 전혀 도와주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가슴도 탁 막히고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자 오랜 기간 애쓰다가 여기저기 찢기고 상처를 입으면 마음이 지쳐 암반을 뚫고 가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성전의 기둥과 같이, 가장 귀한 재목이 되기 위해서는 메마른 광야에서 잘 인내하며 나가야 한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올리브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마침내 주님께서 예비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완전히 자란 올리브가 500kg의 기름을 내듯, 거친 광야를 지나 장성한 나무가 될 때 주변을 성령의 기름으로 환히 밝힐 수 있다.

한 그루의 올리브처럼 거친 돌이 앞에 자주 놓여 질지라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첫 번째 짜낸 올리브기름으로 성전의 등불을 밝히듯,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순간순간 내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데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맑은 물)을 공급해주시는 것은 빛의 열매를 맺으라는 데 있다. 순간순간 주님의 은혜의 생수를 차단하는 단단한 돌인 자아를 깨뜨리고 나가야 한다. 단단한 돌을 가루처럼 깨뜨려 언제든지 주님의 생수가 공급되도록 우리의 영혼을 씻고, 닦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헛된 세상의 욕심을 과감히 끊어버리고 좁은 길로 순간순간 나가야 하며, 영적 게으름과 허영심의 암반을 뚫고 뿌리를 뻗어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과 맞닿아야 한다.

그 누구도 주님의 부르심과 사명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께 바짝 붙어 깊이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열매의 차이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어떤 직분보다 명예와 재력보다 건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빛의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빛이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마더 데레사는 18살에 고향 유고슬로비아를 떠나 인도의 성 마리아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지리와 교리를 가르치다가 1944년에는 교장 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는 식량도 매우 적었고, 폭동도 빈번하고, 할 일이 매우 많은 어려운 시기였다. 몸이 매우 허약하고 체구가 작았던 데레사는 결국 결핵에 걸려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히말라야산 기슭의 작은 언덕에 있는 다릴징으로 보내졌다. “부르심 안에서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은 것은 1946910, 바로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그 메시지가 아주 분명했기 때문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을 위해 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이것이 그분의 뜻이라는 것과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레토 수도원의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 것도 없는 척박한 땅으로 자신의 터전을 옮겼다. 건강, 그동안 닦아놓았던 일터도, 명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연단의 불구덩이로 스스로 뛰어드셨다.

빈민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을 당시, 어느 영국의 한 방송기자가 그녀에게 질문을 하였다.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일생 동안 살아왔는데, 부르심을 받고 어떤 일을 이루었습니까?” 그러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씀을 하셨다.

일이나 그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단지 거기 존재하는 겸손이지요. 그 일의 가치는 그 일을 고무시키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정신으로부터 온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동시에 사랑의 선교사들은 그 누구도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25:35)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병들고 죽어가고 굶주리고 버려진 이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먹여드리고 입혀드리고 방문하는 일 말입니다. 단지 우리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평화의 도구로 세워진 하나님의 일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올리브 나무처럼 그렇게 살아 내는 삶이길, 척박하고 거친 땅을 사랑하고 견디면서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길, 내게 주신 길 위에서 주님이 또 다른 길을 주셔도 넉넉하게 감사함으로 달려가길, 올리브 향기 가득 품은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