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영광에 초대해 주신 주님

찬송가 예수 나를 오라 하네는 내게 특별한 찬양이다. 6년 전 어느 수요예배에서 이 찬양을 부르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 하네.’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주님이 가신 길에 초청해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고, 앞으로 가야 할 고난의 길에 순종을 결단하는 눈물이었다. 주님이 어디로 오라 하시든지 가겠다고 결심한 다음 날, 주님은 사명자의  길을 보이셨고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심이 오롯이 삶으로 옮겨지기까지는 많은 아픔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여실히 배우고 있다.

올 초, 갑작스럽게 어린 영혼들을 섬기는 직분을 받았다. 어린이 관련 사역은 꾸준히 해왔지만 책임자는 처음이었기에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었다. 아이들을 섬기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특히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도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전도한 날, 아이의 집에 오해가 생겨 부모님이 교회에 찾아와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하셨을 때 온갖 두려움과 부정적인 마음에 휩싸였다. ‘과연 내가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 일은 나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교회 직분은 세상에서처럼 명예가 아니라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고난의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니, 전도사라는 호칭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으로 부르라고 했다.

희생만을 요구하는 무서운 직분임을 묵상하다가 부활의 역사에 참여하는 영광의 직분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주일학교 방을 정리하다가 불꽃같은 부흥사 이성봉 목사라는 만화책을 보면서부터였다.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 영혼을 섬기는 자의 모범을 생생히 보았다. 그 모범이란 끊임없는 고난과 희생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과 함께 멍에를 지고 고난을 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강물이 흘러나간다는 것이 목사님의 삶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만주 집회에 가시게 될 때의 일이다. 만주로 가는 도중 평양에서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공부하는 자녀들이 걱정되었다. 아침이 밝을 무렵 도착하니 딸들은 배급 쌀로 죽을 끓여 먹고 있었다. 싸늘한 냉방에서 아버지를 만나 반가워하면서도 죽을 떠먹을 때마다 어려운 사정을 애원하듯 쳐다보는데 만주 집회를 연기한다고 전보를 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도 때지 않은 얼음 같은 방에서 어린 것들이 배급 쌀로 죽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미어졌다. ‘단 며칠만이라도 돌봐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갈등이 되었다. ‘아니다, 나는 주를 따르는 사역자다.’ 불끈 결심하고 일어나서 집회에 가기 위해 나왔다. 기차 시간을 맞추려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한참을 가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보니 아버지를 전송하겠다고 두 딸이 따라 오고 있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해도 끝까지 따라오는 딸들은 구멍이 뚫려 맨살이 드러나고 뒤축은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털모자 하나 없이 다 헐은 수건으로 얼굴을 싸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집회를 연기할까?’ 다시 번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때 법궤를 메고 벧세메스를 향하는 새끼 뗀 암소가 생각나 결단하고 걸었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꽁꽁 얼어붙은 작은 두 손을 흔들어 주는 딸들을 뒤로하고 눈물을 삼키며 기도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이 택하신 군사입니다. 주의 정병은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여, 저 어린 것들을 기억하소서. 아버지여.” 기적 소리가 목사님의 가슴을 찢고 열차가 달리는 동안 한없이 울었다. 기차는 혹독한 추위를 가르며 대동벌을 지났다. 그 이후로 만주, 남신, 유정, 서평양, 동평양 등 집회 때마다 큰 승리로 주께 영광을 돌리고 매일 초만원이 되어 성령의 역사가 크게 임했다. 대동아 전쟁으로 나라가 어려운 때에 목사님의 부흥집회는 목마른 성도들에게 생수가 되어 큰 위로와 성령이 임하였다. 만약 딸들 때문에 만주 집회를 포기하고 집에 머물렀다면 그와 같은 역사는 일어날 수 없었으리라.

지금은 교회 성장의 골든타임이라고 불리는 위기의 시대다. 이런 때에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신다. 그 초대에 응한다면 이성봉 목사님과 같이 혈육간의 애정을 부인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으며, 맛있는 것을 먹고 단잠을 자는 기본적인 욕구마저 포기해야 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존심까지도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도록 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여셨듯이, 우리가 십자가를 기꺼이 질수록 많은 영혼들이 살아날 것이라는 점이다.

6년 전 그날, 나를 겟세마네 동산까지 함께 가자 부르셨던 주님께서 다시 부르신다. 가장 좋아하는 그것까지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 이성봉 목사님처럼 나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 싶다면, 먼저 내게 주신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부르심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였던 사도바울처럼,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불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려면 더 많이 수고하고 고난받아야 한다. 나를 통해 살아나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게 되는 그날, 십자가의 영광에 초대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기쁨과 감격으로 찬송을 올리고 싶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