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소묘
학창 시절, 맑은 날이면 스케치북을 들고 나갔었다. 호숫가에도 숲속에도 들길도 걸었다. 좋아하는 하늘과 구름도, 수반 위로 그늘진 벚꽃 길도 그렸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고전을 읽으며 시간과 세계를 넘나들었다. 하루는 라스꼴리니코프가 되었다가 다음날엔 장발장도 되었다. 어디선가 악기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갔다. 클래식기타와 바이올린에 심취하기도 했다. 낭만과 감상에 젖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성경 속의 진리를 듣게 됐을 때, 모든 게 뒤집어졌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계획을 알게 되자 음악은 찬양으로, 그림은 복음칼럼으로, 낭만은 성화를 향한 집념으로, 센티한 감성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갈망으로 뒤바뀌었다. 그렇게 생업도 놓게 되고, 방향도 완전히 전환되어 달려온 시간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쉽고 아쉬운 것이 있다. 비 오는 날엔 새록새록 일어나는 그리움이다. 빗속에 젖는 만물처럼 흠뻑 젖는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께 흠뻑 젖는 사랑이 그립고 그립다. 코가 시큰해지고 눈물이 고이는 그 사랑이.
「성경의 진리」는 애정과 사랑 사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진실과 명분의 혼합을 용납치 않는다. 주님을 따르거나 회개하는 일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변명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누룩일 뿐이다. 대부분의 죄악과 불의는 자기를 높이고 이득을 취하려는 사사로운 애정과 욕망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주변이 불만이고, 불이익 속에 피해를 본다 생각한다. 회개나 사과 같은 것은 위선이라 여긴다. 스스로 의로운 것이 자기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엾은 것은 가난도 질병도 아니다.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요,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치 있는 것은 죄 같지도 않은 죄를 찾아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비가 와 만물이 깨끗이 씻기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부정함과 불순함은 그냥 놔두고 사는 일이 가장 불행하다. 옷은 깔끔하게 빨아 입고 다니면서 영혼의 흰옷은 준비도 않는 것이 가장 불쌍하다.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뽑으려 않으면서 남의 눈 속 작은 티나 지적해대는 것이 제일 비참한 일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은 문학 속의 멋진 문장이 아니다. 그분의 계명을 따르는 일이다. 아무리 울먹이며 눈물을 강처럼 흘려도 자기 애정과 욕망을 못 박지 않는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는다면, 그저 빛과 어둠을 분별 못하는 감정적 도취일 뿐이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다. 이런 날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좋다. 그러나 그것도 이기적인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아직도 설익은 풋사과와 같다. 주님은 가룟유다의 더러운 입맞춤도 온유와 겸손으로 받으셨다. 이 빗속에 억울함을 항변하려는, 사랑을 거부하려는 이기심과 교오함을 씻는다. 배은망덕 같이 먼지처럼 일어나는 추한 상념들을 씻는다.
더욱 세차게 내려 온갖 더러움에서 나를 맑게 씻어다오. 주님 사랑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닦아다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