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달자가 되라
집에 들어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우편함에 눈이 간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입수하는 세상인데도 편지함의 존재는 건재하다. 목 타게 기다린 합격통지서, 결혼 20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는 외아들이 보낸 소식도, 옛날에는 오직 우편배달부에 의해서만 받았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사52:7 표준)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에게, 왕이 내린 특별사면으로 사형에서 면제받았다는 사면 통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면장을 들고 천국에서 지구로 껑충 내려오셨다. 소식의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명을 끝내신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떠나가시는 날, 엄숙한 명령을 하달하셨다.(행1:8, 막16:15)
이제는 너희들이 배달하여라. 땅끝까지다!
온 천하로, 만민에게 가거라!
명령이 내려진 지 이천 년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는 반란 세력과 진압 세력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철강석보다 더 강한 보장을 약속을 받은 이상, 예수님을 증거 할 곳으로 가서 내가 살 집으로 삼고 그 나라를 선교지로 정하면 될 것을, 세상이 불어넣는 생각에 굴복당하여 들쑥날쑥 방황만 한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신 적이 없는 예수님께, 번번이 고개를 저어 흔든다. 그 뜻을 거슬렀어도 재난이 없으므로 얻어 낸 용기일까? 들킨 죄인이 있고, 숨겨진 죄인도 있다. 범하는 죄가 있고 생략의 죄도 있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약4:17) 생략의 죄이다.
밀라노 성당의 높은 지붕에는 기막힌 조각이 있다. 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절묘한 작품을 새겨 놓았을까? 미국 뉴욕에 서 있는 93m의 자유의 여신상도 그 머리 역시 아름답고 뛰어난 조각이다. 일 년에 한 번씩 헬리콥터를 타고 청소하는 청소부들이 전해주는 소식이다. 가장 아름다움을 하나님께만 보여 드리고 싶은 조각가의 신앙심의 표출이다.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날 구원하신 예수님께, 보여 드리고 싶지 않은가? 말거리를 물어 나르는 마귀의 배달부가 아니라, 바람처럼 오셔서 바람 들게 하시는 분(행2:2). 바람은 히브리어로 성령)의 바람기로, 세계를 누비면서 지옥 길을 차단하고, 천국에 들어갈 영원한 생명을 배달하는 자! 의연한 자태로 하나님의 부서에서 일하는 자 말이다. 주님은 지금도 소곤거리신다. “내가 너를 보내고 싶구나, 바로 내가 사랑하는 너를!” 주님의 한을 풀어 드려라. 가장 큰 보상이 따르는 길이기에, 절대로 후회될 수 없는 길이다. 절대로!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소서!’(사6:8)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