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친구여


삐걱삐걱 녹슨 기계마냥 신음하는 낡은 육체를 껴안고,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내면의 소리와 씨름을 했다.

“여보게, 친구! 날세. 문 좀 열어봐.

“누구?

“날세. 이 사람아, 자네 친구.

“난 또 누구라고. 이 새벽에 눈 좀 붙이려고 하는데 또 이렇게 사람을 깨우고 그러나.

“할 말이 있어서 그러네.

“이 친구야, 겨우 몸 좀 추슬러 이리 뒹굴 저리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또 이렇게 깨우고 그래. 새벽예배도 인도해야 되고 강의도 해야 하고 밤에 특강까지 해야 하는데, 이렇게 진이 빠지도록 붙잡고 늘어지면 어떻게 하나?

“자넨 너무 엄살이 심한 것 같아.

“내가 엄살이 심하다고, 이 늙고 병든 늙은 아담이 따라 주질 않아. 조금만 뭘 하면 끙끙거리고 죽을 맛이야. 요즘 위가 안 좋아서 뭘 통 먹을 수도 없고 커피도 못 먹어.

“자네. 그 커피를 아직도 못 끊었는가?

“가끔 한잔씩 먹지.

“자네가 그렇게 결단력이 약해서 위가 안 좋은 거야. 하얗게 떠오르는 그 크림이 돼지기름에서 추출된 거라서 채식만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 위벽을 후비는 걸세. 과감하게 끊어야지. 정 끊기가 어려우면 요즘 구제역으로 돼지 매립장에서 흘러나오는 돼지 피를 생각해보게. 비린내 나고 똥파리가 우굴 거리는 그 돼지피를 커피 잔에 따라서 먹는다고 생각해보게.

“윽, 그만 됐네. 그렇잖아도 속이 안 좋은데,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는가?

“그리고 자넨 뻥이 너무 세!

“아니, 내가 무슨 뻥이 센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 사람의 환경과 처지와 믿음에 따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시는 분이시라는 걸, 자네 스승의 말씀을 통해서 많이 듣고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또 책을 통해서 배우고, 학교에서 교회에서 많이 증거 했잖은가?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강의시간에도 말하고 전화할 때도 은근히 말하고… 또 여 성도들이 안부를 물으면 괜히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자네 특유의 그 허례와 위선을 떨잖아.

“그건 그 당시 몸이 안 좋아서 좀 그런 거지. 그런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나.

“그때만이 아냐. 내가 알기로 꽤 여러 번 그랬어. 날 속이려고 하지 마.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넨 벌써 상당히 마음이 높아져 있어. 목에 힘이 들어가고 뭔가 좀 하는 것 같으니까 남을 함부로 대하고, 무슨 공동체 행사를 하면 자신의 몫을 챙기려 하고 상당히 교만해진 것 같아. 점점 아집도 강해지고 말이야. 가라지가 된 이단의 교주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게 아냐. 그리고 그렇게 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정욕을 합리화 하면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회개를 철저히 하지 않다가 결국 그렇게 된 거야.

“내가 너무 심하게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아 미안하네만,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일세. 자네, 스승님을 생각해 보게. 그분은 얼마나 철저하게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끝까지 참으셨는가? 오직 하나님 보좌에 계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사랑과 겸손으로 행하셨지.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사시지 않았는가? 오히려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병상에서 불행한 육체적 조건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섭리하신 것 같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 고통중서도 이렇게 기도하셨다네.

하나님 아버지시여, 건강이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매우 중요한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까?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명예와 권세가 높고 좋은 주택과 훌륭한 아내와 자녀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건강이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제가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이 되는 건강을 소유하지 않고, 평생 누워서만 지내야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로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평생 누워서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더 병세가 악화된다고 할지라도 항상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가운데 모든 고난을 이기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제 몸을 바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 하신대로 사시지 않았는가?

“미안하네. 내가 근간에 너무 해이해지고 약해지다 보니까 자네 말대로 엄살이 심했네. 참으로 부끄럽고 추한 죄인일세. 날 용서해주게. 자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방종에 빠져서 벌써 죽었거나 아니면 노숙자 틈에 끼어 추위에 떨며 눈물로 밤을 새우고 있을 인간이지.

“이제 좀 정신이 드나. 다 자네를 사랑해서 그러네. 사실 사람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 무조건 겁을 먹고 멀리하려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지. 물론 처음부터 나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 그런데 차츰 나와 친해지다 보니까 내가 하나님의 보내신 선물이란 걸 알게 된 거야. 사실 나는 하나님의 선물일세. 그런데 변장을 한 거야. 사도바울께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1:29)고 말씀하셨지 않은가?

“그 어른은 복음을 전하시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돌로 맞고, 추위와 굶주림 등 아주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다네. 그런데 그분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했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고난을 통하여 확연하게 드러나지. 왜냐하면 연단을 받지 않으면 성화될 수 없고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범죄하기 쉬운 환경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까지 고난을 통해서 연단 받아 정결케 되는 것이지. 연단은 고난, 아픔, 희생, 인내, 죽음과 같은 것이라네. 그래서 이 광야연단을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지 않고는 결코 갈 수가 없다고 하지 않나.

“자네, 주기철 목사님 잘 알지. 그분이 고문당하실 때 차마 눈뜨고 못 볼 끔찍한 장면이 얼마나 많았는가? 일본경찰들이 고춧가루 물을 그분의 입에 마구 부어 넣었지. 배가 불룩할 때까지 억지로 먹이고는 그 위에 의자를 놓고 위에서 짓누르자, 입으로 코로 귀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지 않았는가? 또 공중에 매달아 놓고 때리고 전기고문을 시키고 정신을 잃으면 물을 끼얹어서 다시 정신이 나게 하고 말이야. 또 발로 차고 벤지로 손톱을 잡아 빼고 이런 수많은 고문을 당했다네.

“차디찬 콘크리트바닥에서 추위와 고통에 신음하며 기도하시던 목사님에게 홀연히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었지.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네가 고난 받을 때 나의 살도 찢기고 내 뼈도 어그러지고, 내 마음도 밀초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힘을 내라.’ 그분의 겪는 고통과 질고는 주님의 것이었지. 그분의 영혼이 겪던 아픔과 두려움도 십자가 위의 고난이었지. 그 어느 것도 주기철 목사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어.

“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흑흑흑.

“이 친구 또 우네. 자넨 무슨 말만 좀 하면 남자가 그렇게 질질 짜며 잘 우는지 모르겠어. , 눈물을 그만 닦고 힘을 내게.

“알았네. 정말 고맙네. 자넨 정말 우리 주님이 보내주신 좋은 친구일세.

“아닐세,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고난! 자네의 이름이 오늘따라 더 빛이 나고 고맙네. 자네는 나의 동반자요 가장 좋은 친구일세. 자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네. , 들어보게나.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에도 성도는 말없이 걸어가야 합니다. 그의 서글픈 무지와 사랑의 부족으로 남이 외면한다 해도 조용히 걸어가야 합니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