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야겠다

땅 중앙에 세워진, 하늘에 닿을 만큼 큰 나무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받았던 느부갓네살 왕(단4장). 어쩜 내게도 주님께서 계속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계시는 듯하다. 빨리 돌이키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스멀스멀 사울 왕의 귀를 간질이던 마귀의 속살거림 같은 것이 마음을 휘젓고 있다.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피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때리며 통회의 눈물을 쏟아도 부족한 판에 명예욕의 덫에 걸려 퍼덕거리고 있다.

함께하는 동료가 나보다 더 총명한 것 같고, 일처리도 잘 하고, 재치도 있는 듯하고, 사람들로부터 훨씬 인정받는 듯 보인다. 요즘은 나 자신이 어느 곳을 가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못생긴 나무처럼 느껴졌다. ‘아니, 저 나무는 왜 저렇게 잎도 시들고, 열매도 없고, 새들도 모이지 않아! 그냥 싹뚝 잘라버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마음의 부담감이 나를 계속 짓눌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나도 저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땅 끝에서도 보이는 그런 느부갓네살 왕처럼 큰 나무가 되고 싶단 말이야. 언제부터 이렇게 초라하고 굽은 나무가 되었지.’ 겉으로는 고상한 척, 겸손을 갈망하는 척 하면서 허례와 위선의 껍질을 쓰고 내 안에서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큰 나무를 계속 동경하고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싱싱한 나뭇잎과 열매들, 많은 새들이 둥지를 트는 그런 그럴싸한 나무가 되고 싶었다.

마음에 교만의 넝쿨이 계속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동료의 모습조차도 괜히 미워졌다. 그러면서 초라하고 낡은 나무 밑동만 겨우 부둥켜안고 있는 듯한 내가 한없이 초라해보였다. ‘저 옆의 나무는 저렇게 크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자꾸 몰려드는데, 난 이게 뭐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 때문에 애달파서 이불을 푹 덮어쓰고 숨죽여 울고, 악습 때문에 허벅지를 멍이 들 정도로 때렸던 적이 언제였던가. 불결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지언정 차라리 죄 짓는 것보다 배고픈 게 나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마음에 악심이 올라올 때면 주님을 목 놓아 부르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던 적이 언제였던가. 정욕의 오물을 어떻게 해서든지 밟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던 때가 언제였던가. 어디서 떨어뜨린 것일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4).

새가 갑자기 덫에 걸리듯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일면서도 머뭇거리고 있다.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이 나이에 아직도 “다 숨었니? 열 세고 간다.” 꼬마 아이들이랑 숨바꼭질이나 하고 있는 내가 초라해 보인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입술을 실룩거리며 투덜거렸다. 머리에는 뿔이 나고 가슴도 답답해져왔다. ‘아, 내가 왜 이러지. 이렇게도 못난 사람이었나? 정말로 왜 이렇게 심술이 나지.’ 텅 빈 교육관에 서서 창문 너머로 흐린 하늘을 바라보는데 꼭 내 마음 같았다.

밤 12시가 훌쩍 넘어가는데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거듭되었다. 그런데 입술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라.”는 찬양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순간 번개처럼 생각이 스쳐갔다. ‘무엇이 그리 초라하고 부끄러우냐? 무엇으로 인해 그렇게 기가 팍 죽어 있느냐?’

주님이 마음에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 교만을 꺾어라. 수치와 굴욕, 모욕, 비천함은 나에게로 가까이 오는 길이다. 너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아무 능력도 없고 마치 많은 사람들로부터 투명인간처럼 느껴질지라도 묵묵히 나만 바라보고 좁고 협착한 광야 길을 달려와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너의 모든 욕심, 탐욕, 교만의 탑을 다 무너뜨려야 한다. 가루가 되도록 다 부서져야 한다. 그러려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쳐 봐야 한다. 너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나약한 인간인지 뼈저리게, 가슴이 후벼 파이는 고통을 느끼고 체험해야 한다. 아리고 쓰라려도 묵묵히 참고 인내해야 한다. 7년 동안 네 발 짐승처럼 기어 다니며 풀을 뜯어 먹고 이슬 맞으며 살았던 느부갓네살처럼 납작 엎드려야 한다. 모든 권세와 능력도 내게서 비롯된다. 너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가 무엇으로 내게 힐문하느냐?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깨뜨리고 다른 그릇을 만드는 권이 토기장이에게 있지 않느냐? 시기와 질투로 네 뼈를 썩게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라. 시기와 질투는 결국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굴욕과 수치와 부끄러움을 참는 인내와 겸손을 부지런히 배워라. 이 땅의 헛된 부귀와 영화만 보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늘을 우러러 보아라.’

영성생활에 비곗살이 붙어 허리도 굵어지고, 머리와 몸은 자꾸만 커지는 반면 다리와 팔은 앙상해진 초라한 내 영혼에 맑은 물이 조금 고이는 듯하였다. 편한 자리, 높임 받는 자리, 주목받는 자리에만 둥지를 틀려고 했던 그동안의 안일한 모습이 비쳐졌다. 속이 텅텅 빈 썩은 고목나무였다. 날지 못하는 몸집만 큰 타조였다. 뒤뚱거리고 다니면서 이웃의 큰 알만 탐내는 놀부요 졸장부였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순수했던 그 첫사랑을 찾아 다시 싹부터 피워야겠다. 큰 나무에 연연해하지 말자, 그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의지하는 작은 나무가 되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못 생기고 키 작은 나무일지라도 주님만이 나의 전부이길 소망해본다. 하나님께 순간순간 나를 내어맡기며 환난의 때를 대비하여 철저한 회개의 눈물로 다시 영혼의 탱크를 채워야겠다. 하늘을 우러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느부갓네살처럼, 나의 주인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찬양을 올려본다.

“거듭난 감격으로 주님께 드리기 원하네. 작지만 내겐 최고의 것으로 주님께 드리기 원하네. 이렇게 작은데 주님 아실까요. 이것이 전부인데 주님 아실까요. 비록 초라해도 주님 기뻐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