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처럼 춤을 추면서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낯선 무언가를 만나게 되면 생존이 급선무다. 환경도, 사람도, 일도 그렇다. 하지만 분주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찬양은 내게 활력소요 힘이었다.

내게 익숙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해온 찬양은 주님을 향한 가장 비밀스러운 사랑 고백이다. 찬양 속에서 주님을 만났고, 자신을 돌아보았고 눈물을 쏟으며 회개했다. 찬양을 부르면 감사가 넘치며 평안이 임했다. 내 인생에 결코 뗄 수 없는 것이 찬양이다. 간혹 예외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 은근히 자신감이 넘쳐서 겸손함을 잊어버릴 때, 수치심이 몰려와 평안이 사라질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수치심으로 가득 찬 얼굴을 주님께로 향하고 조용히 회개의 찬양을 올려 드릴때, 주님은 끝없는 자비하심으로 용서해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셨다.

오랫동안 청소년 수련회에서 찬양팀으로 섬겨왔고 그 속에서 주님의 임재와 은혜와 행복을 많이 누렸다. 이번 청소년 수련회는 1년 만에 찬양 팀이 다시 모이는 수련회라 기대가 컸다. 그런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실망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일 때문에 수련회 장소에 상주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분주함이 있었다. 때문에 감당도 못하면서 맡았나 싶고, 다른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잠이 부족해서 목소리 조절도 잘 안 되었고, 마이크 문제로도 예민해졌다. 예전에는 잘 넘기며 이해했던 형제의 단점도 두드러져 보이며 속상했다. 찬양에 집중하면서 좁아터진 마음을 넓히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자기 실체를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주님은 역지사지로 몰아넣어 비참하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스스로는 배려심이 있고 이해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하나님께만 집중해서 찬양하고 싶은데,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부딪치고 마이크마저 신통치 않아 안타까웠다. 부분적으로는 마이크를 쓰지 않고 찬양을 하기도 했다. 하나님께 찬양하는데 마이크가 뭐 그렇게 대수냐?’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이 순간 클로즈업되었다.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이곳에 있음에 감사했다. 이 순간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작은 시간들이요, 은혜의 자리임을 깨닫자 내 안의 분주함과 상처가 사라졌다.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은 분명 자신을 깨닫고 돌아보라는 주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그 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회개하는 것이었다.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이 광야에서 지낼 때를 묵상해보았다. 11초가, 순간순간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고 고통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윗은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하고 찬양하며 기도를 드렸다. 마음속에 사울 왕을 향한 원망과 저주가 꿈틀거릴 때, 밤하늘에 박힌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애통하며 찬양했을 것이다. 여호와께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며 또 행동하며 나아갔을 것이다.

다윗의 도망자 생활을 떠올리니 소망이 생겼다. 마음을 돌이키고 주님께서 돌아갈 용기가 다시 불끈 솟아났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이 춤추며 찬양했던 다윗처럼 주님께로 얼굴을 향할 때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하다.

! 주님, 저로 하여금 다윗처럼 춤추며 전심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저의 하루 시작과 끝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채워지게 하소서. 할렐루야!”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