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도 열매 가운데 하나


몇 주 전 저희 교회와 가까운 곳에서 시무하시던 전도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인지라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자동차의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로 주님 곁으로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질병으로 인해 건강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분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죽음을 잘 준비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죽음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고로 죽게 될지, 아파서 죽게 될지, 돌연사를 당할지 모르기에 죽음은 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삶이란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신 것입니다. 그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각자에게 달려있으니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삶을 잘 살아가야 합니다.‘과연 나는 잘 살고 있을까?’나의 삶을 돌아보니 열심을 내어 무언가를 최선을 다한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살아가다보면 뭔가 이루어지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삶인가요.

오늘의 현실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내 소중한 인생의 시간들을 허송세월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많은 후회들이 밀려왔습니다.

육의 삶을 돌아봐도 이렇게 후회하는데 영의 삶을 돌아보면 주님 앞에서의 죄스러움은 더 크겠지요. 주님은 이 죄인을 위해 모든 것을 주셨지만 나는 그런 주님을 위해 드린 것이 너무 없으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감사함을 가지고 행하지도 않았고, 최선을 다하지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의 열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의무감만 남아 ‘내가 해야 할 것들만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변해갔습니다. 주어진 시간만을 채우면 그만이라는 안일함에 빠져 열심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로 미루면 된다는 태만함이 내안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순간순간 충성스럽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저를 보니 그저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마땅한 나를 위해 생명을 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작은 것 하나 충성하지 못하고 있으니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맨발로 지하철 전도를 하시던 최춘선 할아버지, 마지막 임종도 지하철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던 그분의 외침이 귓전을 따갑게 울립니다.

“충성도 열매 가운데 하나요.

믿음의 선진들은 주님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건만 나는 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과 심령의 밭이 비교도 안 될 만큼 다르기에 맺히는 열매도 다를 텐데 거기에 노력의 흔적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중심으로 잘 살아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충성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밝은 빛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 할 때 주님은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