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
얼마 전 한국교회의 존경받는 한 원로 목사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목사님은 개척해서 25년간 목회하며 2만명의 성도들을 양육하셨다. 보통 20년 이상 교회에서 시무하면 원로목사가 되지만, 일찍이 원로 목사 제도를 폐지하고 전별금도 마다했다. 조기 은퇴하여 퇴임할 때 받은 퇴직금마저 전부 교회에 헌금했다. 지금은 작은 수도원을 하나 세워서 그곳에서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한국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하고 있으시다.
목사님은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입을 여셨다. “저는 은퇴하고 한국교회의 봉사단체를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다음세대를 일으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이 모이지 않더군요. 헌신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교회들이었고, 정작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향한 비판을 멈추어야 합니다. 개혁은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뉘우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혜안이 담긴 말씀에 시끄럽던 속이 조용해지고 불이 환히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권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모두 개혁을 얘기하지만 정작 자신이 빠져있고 남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뿐이다. 과거의 잘못까지 들추어내며 지적질하기 바쁘지만 그 속에 나와 내가 속한 단체는 쏙 빠져있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즈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말로 ‘내로남불’(naeronambul)을 소개했을까. 타락한 인간의 영속에 뿌리박힌 마귀의 성질은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도록 끊임없이 부추긴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내게 큰 교훈을 준 경험이 있다. 처음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개강하는 날,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강의실에서 사용할 작은 슬리퍼를 사서 이름도 새겨 넣고 신발장에 곱게 넣어두었다. 다음 주에 학교에 와서 신발장 문을 열었는데 신발이 그 자리에 없었다. 발이 유난히 작아서 쉽게 맞을 사람도 별로 없는데 신발은 몇 주 동안 계속 없어졌다. 나는 그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슬리퍼를 찾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같은 반에 있는 한 권사님이 신고 계셨다. 나는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것을 마음대로 쓰는 행동에 대해 꽤 화가 났다. 하지만 권사님께 얘기할 타이밍을 잡기는 쉽지 않았고 내 슬리퍼를 신지 못하는 날이 더욱 많아졌다. 그때부터 권사님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되찾을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성경을 읽을 일이 있었다. 그때 권사님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돋보기 안경을 꺼내시더니 확대경까지 꺼내어 들고 글자를 더듬더듬 읽으시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권사님은 10년 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여 생명이 위험한 지경까지 갔었고 가까스로 회생한 이후에도 시력만큼은 회복을 못하던 중이었다. 글씨가 가장 큰 성경책이라도 두꺼운 돋보기와 확대경까지 사용해야 겨우 읽을 수 있는 분이 슬리퍼에 쓰여 있는 작은 이름을 읽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순간 슬리퍼 하나로 사람을 오해하고 판단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기도회 시간,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며 다시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날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비교종교학 이론 중 ‘판단 보류의 영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면서 타 종교를 함부로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해인 수녀는 이 이론을 영성생활에 적용하여 이러한 기도를 드렸다. ‘판단의 말은 보류하되 사랑의 행동은 빨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우리가 판단하는 이웃의 모습 속에는 분명한 잘못이 있고 오류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어떤 경우에 그 사정은 나의 변명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좀 더 너그러이 용납할 필요가 있다. 오늘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봤다면, 내 안에는 몇십 배가 되는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자. 그동안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수많은 결심을 했지만 지키지 못한 공약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거창한 결심 대신 오늘 하루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기를. 혹시 보게 된 작은 허물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전달하지 않는 작은 사랑을 실천해보기를 다짐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