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이사
요새 우리 부부는 뒷산에 사는 한 부부의 이사에 관심이 크다. 작년 봄에 그렇게 열심히 오르내리며 지어놓은 나무 위 전원주택을 옮기는 부부가 있다. 천여 번을 날라야 하는데 왜 저렇게 수고할까, 그냥 살 수 없는 일이 생긴 걸까, 새 마음과 결심을 하게 된 걸까. 볼 때마다 즐거운 상상을 주고받는다.
새로운 집짓기가 시작됐을 때, 가까운 곳에 이웃이 또 들어오나 했다.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긴 하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년 집은 점점 허술해져 가고 새집은 더욱 풍성해져갔다. 며칠을 바삐 지내다 어느 날 바라보고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봐요, 저거 이사하는 거네요. 하하, 까치 익스프레스야.”

먼저 살던 집은 흔적만 남았고, 새집은 더 크게 더 견고하게 짓고 있었다. 더 반가운 것은 몇 나무 더 가까이 짓다 보니 까치 부부의 집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어떻게 들락거리는지, 한 달 동안이나 정성을 들인 보금자리를 고스란히 옮기는 열심과 공중 이사의 고도기술은 어디서 배웠는지, 이번엔 알을 몇 개나 품을지 등 살가운 정이 생겼다.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중고나라”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 긍지를 느끼게 한 것은 재활용의 즐거움이었다. “저 보라고요.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재활용이고, 자연의 것을 감사히 다 쓴 후에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의에 있다고요.”
나뭇가지로 나무 위에 세우고, 다 쓰면 감사히 또 나무로 옮겨가고, 결국엔 땅에 떨어져 또 나무가 되고.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신 우리가 죽으면 다시 땅에 묻혀 땅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사는 곳은 잠시 자연에서 빌려 사는 것뿐이니, 내 것이라 할 것도 없다. 모든 동물 중에 유독 사람만 빌려 쓰는 것들을 내 것이라 소유화한다. 하나님께 맡기고 떠날 줄을 모른다. 한번 차지하면 목숨을 걸더라도 뺏기지 않으려 안달한다. 떠날 일이 생겨 훌훌 날아갈 줄 모르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래서 더 견고히 집을 짓고 영역을 고수하고 더 확장하려 살인도 약탈도 범한다. 사는 게 그저 비를 피하고 누울 수 있으면 그만인데, 왜 그리 치장하고 욕심을 내고 더 넓히려 하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좋으신 하나님께로 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검박하고 청빈하다. 떠나야 할 일이 생겨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고, 그분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는 까닭이다. 필요하면 주심을 믿는 믿음은, 잃을 때에도 요동하지 않는다. 모든 사정을 익히 다 아시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영구히 정착할 곳은 이 땅이 아닌 저 하늘나라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잠시 빌려 쓸 뿐이다. 누가 임시 처소에 높은 소망을 두는가. 누가 재물을 땅에 쌓는가. 훨훨 날아 하늘로 가는 이들은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는다. 잠시 머무는 감사만 있을 뿐이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