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끝나는 때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 꽃이 피기도 전에 벌써 여름의 무더위를 떠올리게 한다. 여름엔 오곡이 익는 시원하고 풍성한 가을을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봄을 기다리고. 인생의 여정인 기다림은 어쩌면 끝나지 않는 꿈인지 모른다. 다다르면 또다시 저 멀리 물러서는 무지개 같은. 그를 좇아 또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고, 실망이 깃들 자리에 또 다시 꿈을 심는, 인생은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이 끝나는 때가 있을까? 죽음일까. 아닐 것이다. 죽음 뒤엔 또 천성의 입성을 기다리고, 천성에 들어가서는 후에 들어올 이들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언제나 이 기다림이 끝나는 것일까. 끝이 있기는 한 것일까.

기다림을 주시는 그분이 내 안에 있다면 기다림은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의 근원이신 그분이 내 안에 있는데 무엇이 그리울까.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 나라가 언제 임하는가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전부이신 주님을 영혼 가득 차지한 이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주님을 가졌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 이는 진정 꿈같은 일이나 이생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 특은을 받은 이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들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사막이든 감옥이든, 질병이든 죽음이든 그들의 평화를 깨트릴 자 누구일까. 이미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이 그 안에 있는데.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처럼 행동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내가 하는 것 아니요, 주님께서 내 안에 계셔 할 수 있으니 그는 얼마나 행복하고 고요할까.

나는 안다. 평화와 고통이 함께함을. 주님도 고통하셨다. 종종 마음이 찢어지셨고, 때론 슬퍼 우셨다. 괴로움과 처절한 외로움이 그분이 겪는 일이었다. 창조주이신데, 하나님이신데도 그러셨거늘 나는 어떠랴.

내 안에 주님을 온통 차지한다 해서 고통이나, 슬픔, 외로움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주님이 외로움을 느끼시면 나도 느끼고, 나도 고통하는 것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면 마땅히 기쁘고, 행복하시면 더 말할 것 없이 행복한 것, 바로 이것이다.

그저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으로 감사하자. 더욱이 주님의 특별한 긍휼이 있으셔서 나를 남김없이 차지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통, 슬픔, 외로움이나 그리움조차 주님이 원하시면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모든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하는 행복이니까.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