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값진 보화를 가진 자

천국은 마치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과 같다”(13:45)고 하셨다. 값진 보물을 탐색한 상인은 소유물을 다 팔아 그 보화를 기필코 움켜쥐었다. 그 보석덩어리 하나로 옛날 재산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박이 터진 것이다. 천국 보화는 어디 숨겨져 있을까? 성경에 묻혀 있다. 신령한 눈으로 보면 즉시 발견되도록 가까운 낮은 곳에 진열해 놓으셨다. 안타깝게도 교회는 달콤한 팥죽을 내놓기 싫어 어마어마한 보물을 놓치고 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12:32). 완전 보장을 약속하는 희열의 말씀이다. 반면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33)는 바로 다음 절의 말씀은 세상을 부요케 하고 하늘 거부가 되는 비결인데도 강조되지 않은 채 거의 무시당하고 있다. 농도 있게 사모할 진수인데도 말이다.

신명기 28장은 나가도 들어와도 복 받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는 축복덩어리다. 그러나 축복말씀은 19절에 불과하고(1-19) 저주에 대한 경종의 말씀은 두 배가 넘는 49절이나 된다(20-68). 배부르면 타락하는 인간의 습성을 아시고 갑절로 저주의 말씀을 연거푸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부분을 경고하지도 않았고 경청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재앙을 받으면서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행운이나 불행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더 좋은 결말을 주신다는 솟구치는 희망의 말씀이다. 다음 29절에서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밝히신다. 환난도 복으로 되받는 축복의 사람들은 반드시 성화의 과정까지 어김없이 밟아야 복 받은 자의 보답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틈만 나면 반복 암송한다(6:9-13).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고 분열은 더해 간다. 그 다음 14, 15절 말씀까지를 주님의 기도라 봐야 한다고 토리 사제는 역설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수세기 동안 남의 허물을 용서해줌 없이 감정의 골을 덮어둔 채 주문 외듯이 감동 없는 기도로 주님을 괴롭혔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요삼 2). 삼박자 축복이라 말한다. 바로 밑의 3, 4절은 축복받은 자의 삶이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는 주님의 소원이시다. 복 받은 자는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함을 새록새록 되살려야 한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살전5:16-18)을 익히 암송한다. 그러나 바로 전의 15절의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선을 쫓으라는 구절까지를 하나님의 뜻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이 말씀을 도태시키므로 혼자는 경건하나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파렴치한 불구자 신앙이 되었다. 심마니 정신만 가졌어도 곁의 보화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심봤다를 외치며 그 귀한 말씀을 주워 담았을 것이다.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화들짝 깨어 보물을 찾자.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가 있듯이(4:15) 열 아들보다 나은 아내가 있듯이(삼상1:8) 열두 보석으로 곱게 꾸민 예수님의 진기한 신부가 되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5:3)고 하신다. 짜릿한 흥분으로 포만감을 갖지 말라. 얕은 신앙에서 고차원의 사도행전의 사람들로 승격되었으면 한다.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