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감동스런 영상을 보았다. 10년 전 TV에서 방영했던 ‘수녀 엄마와 열한 명의 아들’이라는 다큐이다. 수녀 엄마, 서울아동상담센터장 김보애님은 지인들의 후원을 받아 ‘쌘뽈나우리’라는 모래놀이치료도구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의 직원들인 열 한명의 청년들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대표 최종호군은 그중에서도 맏아들이다. 최군이 7살 때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어머니는 도망갔다. 그는 초등학교 대신 남대문 시장에서 일을 했고, 친척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하게 그를 돌봐주었던 누나마저 뺑소니 사고로 잃었다. 서울로 와서 어머니를 다시 찾았지만 1년이 조금 지난 뒤 삶에 지친 어머니는 또 달아났다. 그는 먹을 것을 훔치다가 경찰에 잡혀 아동상담센터에 인계됐고, 그곳에서 김보애 수녀를 만났다. 최군은 센터에 들어와서도 자주 가출했다. 그런 최군에게 꿩우리 관리, 운동장 청소 등 일을 맡기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군은 돌봄을 받으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진정한 가족애를 느꼈다. 삶에 희망을 얻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상담소 최초로 대학에도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어엿한 사업가로 후배들까지도 책임지고 돌봐주는 사람이 되었다. 열한 명의 아들들은 각각 다른 사연을 품고 있지만, 최군과 같이 부모에게 버려지고 학대받은 아동들로써 상담센터에 와서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처음 상담소에 발령받았을 때, 자신에게 이토록 험난한 어머니의 길이 예비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김수녀는 고백했다. 그런 그녀를 엄마로 키워낸 것은 아이들의 눈물이었다. 사람이 어디가 아프면 그 아픈 자리만 생각나듯이,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떠오르는 엄마 생각으로 아파했다. 아이들에게 다른 것은 다 해줄 수 있었지만, 엄마가 되어주는 일만큼은 어려웠다. 젊고,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자신이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사랑으로 돌봐준 아이들이 배신하고 떠날 때면 무너지기도 했고,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불우 아동을 가슴으로 돌본 20여 년의 세월을 통해 이제는 자신이 ‘엄마’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고 했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기에, 혹여나 이 아이들이 또 자신을 떠나 곁길을 간다고 해도 끝까지 믿고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독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선택하고 살아오면서, 뛰어넘어야 할 한가지 산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바로 ‘이기심’이라는 장애물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보여주시는데,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커다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삶을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겠노라고 큰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끔찍한 이기심은 늘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육신의 고통을 느낄 때, 남의 아픔보다는 늘 내 아픔이 우선이었다. 타인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 욕구에는 지체없이 반응했다. 무엇이라도 좋은 것이 생기면, 우선 나의 필요를 채우는데 급했다.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나의 모든 관심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문제는 맡겨주신 영혼들을 섬기려 할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어머니와 같은 조건 없는 사랑을 목말라 하고 있는데, 내 안에는 그러한 성숙한 사랑이 없었다. 늘 주는 만큼 받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지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그녀의 이름 ‘마더’는 가난한 자들이 붙여준 것이다. 누구든 그녀를 만나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를 만났던 모든 이들은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온유하고 긍휼 어린 얼굴을 보는 기회를 누렸다. 그녀를 가까이서 본 이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만을 생각하셨습니다. 몸이 아파도 언제나 가난한 이들에게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돌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를 매우 경건하게 받아 모시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망가진 육체를 그와 똑같은 존경으로 대하셨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말했다. “‘기독교는 내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이 있을 때까지 내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참된 것이 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주셨으니 말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그분의 마음을 닮은 숭고한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마더는 너무도 선명히 보여주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가장 많이 닮은 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은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림자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그 자비를 드러내고 계시다. 그리고 그 자비의 얼굴이 되도록 나를 부르셨다. 이기심을 넘어 어머니의 사랑으로, 나의 좁은 마음을 넓혀 주시기를 간구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