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려 시골에선 여러 날 동안 잔설을 걷는 기쁨을 누린다. 뽀드득 소리를 좇아 부러 안 밟은 눈길을 논으로 밭으로 걸어본다. 이럴 때 마음은 속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발걸음은 토끼처럼 가벼워진다. 간사님을 좇아 눈쌓인 하얀 밤 골목을 돌며 은은하게 부르던 성탄 새벽송,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던 눈밭에 찍던 몸도장, 사과궤짝으로 눈 성을 쌓으며 했던 눈싸움, 비료포대로 타던 온몸 스키…. 

그 반대편의 기억도 일어난다. 방죽 얼음이 쩡쩡거리는 결빙음에 빠져 죽은 억울한 사람의 맺힌 한이라는 얘기를 듣던 두려움도, 애써 만든 눈사람이 흉측하게 녹아내린 것도, 개울가 눈덮힌 돌담 사이에서 헐떡이며 죽어가던 참새도 보며 허무함도 느꼈다. 

그러나 흰눈은 어두운 기억보단 환한 동심의 기쁨을 더 많이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걸으며 맛보는 최상의 감격스러움은 순백에서 온다. 

순결이 주는 감동은 맑은 하늘이나 깊은 계곡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들의 새싹이나 꽃잎에서도, 봄날의 부드런 바람결이나 여름의 녹음에서도, 빛으로 신비롭게 채색되는 가을의 열매에서도 온다. 하지만 겨울의 눈, 백설은 이 모든 순결한 것들의 결산이요, 또 다른 시작이다. 

하늘로부터 바람에 실려 내린 그 작고 깃털처럼 가벼운 눈들은 비처럼 신속히 흘러 사라지지 않는다. 조용히 대지를 덮고 또 덮는다. 그러다 태양의 빛이 닿기 시작하면 눈부시도록 찬란한 세계를 활짝 펼쳐놓는 것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것들도 순결을 저 눈처럼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모든 더러움과 아픔, 불평과 비난, 원망과 서운함, 거짓과 욕심… 보이던 모든 어둠이 다 덮혀 묻히고 오직 하얀 빛만이 온 천지에 가득 찬다. 하나하나의 눈송이마다 순결하게 반짝이며 서로 완벽하게 연결되어 추함도 더러움도 다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순결은 그것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 왜냐하면 지상에 없는 그 순결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탄생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순결하신 이유도 그것이고, 예수님을 신랑처럼 진심으로 사랑했던 분들이 순결한 생애를 산 이유도 그것이다.

새벽 눈길을 걸어 교회당에 왔던 방애인에게 주님은 "너는 눈처럼 깨끗하여라" 음성을 들려주시며 정말 눈처럼 순결한 성녀로 빚어가셨다. 버려진 고아들을 업고 안고 이끌어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 깨끗이 씻어주고 품어주는 모습을 본 이들은 예수님을 본 것 같다고 했고, 불량배들도 눈길을 피했다. 소녀들은 방애인의 사진 한 장 갖는 게 소원이었다. 주님은 더 가까이 두고 싶으셨는지 순결한 24세에 방애인을 천국 보좌 가까운 곳으로 부르셨다.

순결은 자기 사랑을 배격한다. 순결은 본질적으로 육성의 중심인 자아를 부인한다. 순결은 전적으로 오직 주님 사랑에 몰입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순결한 떡과 음료만을 소원한다. "내 살을 먹으라, 내 피를 마시라." 하신 예수님만을 흠모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순결하신 분이시며, 그 순결한 사랑을 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눈이 유난히 많은 겨울에 순결을 소원하며 걷는 길은 넘어져도 즐겁고, 그 눈 속에 파묻혀도 행복하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