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구석에 애처로운 남학생이 있다. 일곱 놀이터에서 만남이 시작됐는데, 가정환경이 좋지 않고 아픔이 많은 학생이다.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여러 차례 전화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문자를 남겨놓았더니 졸업식 하루 부재중 전화 통이 있었다. 전화를 다시 하니 작년 11 말에 허리를 수술하신 할머니 병원을 방문하느라고 바빴다고 한다. 

다음날 잠깐 짬을 내어 선물과 꽃다발을 전해주었더니 여드름 아이의 얼굴이 환해져서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졸업앨범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졸업장 왼쪽에 꽂힌 상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상’이라는 제목 아래 “위 학생은 친구들 모두에게 사랑을 듬뿍 주었기에 상장을 수여함.”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학생은 숫기도 별로 없고, 일곱 살에 엄마랑 헤어지고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사업에 실패하신 아빠와도 연락이 끊겨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는데, 의외였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남학생의 다른 모습을 보는 듯했다. 

얼마 전만 해도 까까머리였는데, 약간 길어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오 감동인데, 네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가 보다.”라고 칭찬하자 굵직한 목소리로 “아. 네. 아이들이랑 친해요.”하고 답변한다. 삐쩍 마른 체형에 키는 훌쩍 컸지만, 아직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지 못함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래도 꿈이 없던 학생이 최근 하고 싶은 일과 목표가 생겨 응원해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신년 예배 뽑은 빌립보서 3장 14 말씀 카드도 그렇고, 겨울 청소년 수련회 가장 마음을 울렸던 ‘푯대를 향하여’라는 찬양도 그렇고, 마치 하나의 연결고리처럼 주님께서 계속 내게 말씀하는 듯했다. 

‘사랑하는 딸아! 인생을 졸업하는 날, 앞에 섰을 너는 과연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평가가 주어질 같으냐? 실패와 고통 앞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푯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라. 이전 것은 잊어버리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열심을 내렴.’ 

우리는 과거를 많이 붙들고 살아간다. 예전에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했고, 헌신했고, 섬겼고, 사랑했고, 인내했고, 절제했고, 기도했고, 긍휼을 베풀었다고 자랑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연민에 빠져 지난날의 실패와 아픔을 되씹으며 주저앉아 삶을 낭비하고, 어떤 이들은 나이와 환경과 육신의 연약함을 핑계 삼고, 어떤 이들은 자존심과 연륜과 경험을 내세우며 더이상 열심을 내지 않으려 한다. 어제의 자랑거리도 실패도 수치도 나이도 지위도 잊어버리고 우리는 앞에 계신 그리스도께로 계속 달려가야 한다. 출발점에 섰던, 중간지점에 왔던, 많은 길을 달려왔던 우리는 아직 목표지점에 이르지 못했다. 

로마 감옥에 투옥된 노사도, 사도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두려워 떨거나 육신이 닳고 닳았다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오직 하늘의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했다.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얻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달려 나갔다. 결박과 환난도 문제 되지 않았고, 어떠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오직 가지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 

수많은 쓰라림과 고통을 온몸으로 안으며 14년이나 감옥생활을 했던 「천로역정」의 저자 번연은 “때로 생각나듯이 조금씩 달려가거나 중간지점 혹은 거의 종착점에 이른 것이 아니다. 나의 목표는 나의 사명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며,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달려가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종점이 경주의 마지막 순간까지 달려가는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과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며 믿음의 경주를 하였던 분들은 모두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으셨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과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6-38). 

모세는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애굽의 모든 보화와 안락한 삶보다 수치와 고난을 선택했다. 다니엘은 세상의 명예와 권력보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기꺼이 사자의 밥이 되고자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땅에서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어떤 믿음의 길을 걷고 행했느냐에 따라 상급은 확연히 달라진다. 

하늘의 상급을 받으려면 넓은 길보다 좁고 협착한 길로 계속 달려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마른 광야에서 40년간 지내면서 온갖 시험과 슬픔과 고통을 맛보며 가나안 땅에 도착했듯, 우리 또한 험난한 길을 고통 가운데 인내하며 걸어야 한다. 우리 주님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로 달려나가야 한다. 

거친 광야에는 눈보라와 모래바람, 수치와 모욕, 실패와 좌절, 사나운 맹수와 이리 떼들, 슬픔과 눈물, 온갖 아픔들이 서려 있다. 길을 지나야만 마침내 우리의 목표지점에 다다를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광야 40 연단과정을 마쳐야만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할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이것이 우리의 푯대이며, 목표지점이다. 

이그나티우스 브리안 카니노프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슬픈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슬픔은 기쁨을 이루는 슬픔’이다. 땅에서의 고난은 장차 하늘의 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롬8:18). 

밀턴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가장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이 천국에서는 가장 많은 영화를 받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지나온 사람이 천국에서는 가장 승리와 성공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하늘의 상급을 받아 누릴 있다. 마태 기자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인사로 맞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모든 수고가 끝나고 달려갈 길을 마친 그날에 천군 천사가 우리를 환호하며 주님 앞에서 생명의 면류관과 환희의 꽃다발을 안겨주실 것이다. 오늘도 소망과 믿음이 있기에 행복하다.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실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나가자. 아프고 슬퍼도, 매를 맞아도, 피를 흘려도,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푯대를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환하게 미소 지으실 주님께로 없이 달려 나가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