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청소년 중 영어, 프랑스어, 일어 등 언어에 뛰어난 학생이 있다. 한번은 그 학생에게 언어 습득 비결을 묻자 ‘자주 많이 생각하면 된다’라고 간단명료하게 답변하였다. 비단 언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즐겨하고 좋아하는 것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 어느 기자가 찾아와 질문했다. “선생님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위대한 법칙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러자 뉴턴은 “예. 저는 언제나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결과도 달라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8:6)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악한 것을 생각하면 악을 낳고, 선한 것을 생각하면 선을 낳는다. 

이용도 목사님은 무엇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보다 더 생각하고, 더 사모하고, 더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는 큰 죄악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예수님을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떤 은수자가 주님께 물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저기 가면 나에게 아주 충실한 농부가 한 사람 있는데 너는 가서 그 농부가 하는 것을 잘 살펴보아라. 그러면 나에게 충실하게 사는 비결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는 많은 기대를 품고 그 농부의 집에 가서 먹고 자면서 그가 하는 것을 살폈다. 그런데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침에 해가 뜰 때 일어나서 ‘주여!’ 한 번 외치고는 밭에 나가서 종일 쉬지 않고 일했다. 저녁에 들어와서는 저녁 식사하고는 또 ‘주여!’ 한마디 외치고는 쓰러져 잤다. 그다음 날 또 그렇게 했다. 일주일째 되는 날 그는 주님께 물었다. “주님, 나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 농부의 생활을 잘 살폈습니다. 그러나 배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 무엇을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조그만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라. 그런데 항아리에 든 물이 엎질러져서는 안 되느니라.” 은수자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주님, 주님이 시키는 대로 했나이다.” 했다. 주님이 그에게 물었다. “잘했다. 그런데 너는 물 항아리를 들고 마을을 도는 동안 나를 몇 번이나 생각했느냐?’ 그는 솔직하게 물이 엎질러지지 않게 하느라고 한 번도 주님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주님은 “그것 보아라, 너는 그 단순한 한 가지 때문에도 나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농부는 그렇게 바쁘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나를 생각하고 부르고 있느니라.’ 은수자가 크게 깨닫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주님은 기뻐하신다는 우화이다.

이삭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사람이었다. “이삭이 저물 때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창24:63). 시편 기자는 밤마다 하나님을 묵상했으며, 주님의 모든 행사를 깊이 생각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 하오리니”(시63:6).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시77:12).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해 주신다고 하였다(말4:17). 그리고 그날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를 삼으신다고도 했다. 전도서 기자는 주님을 묵상할 때 삶의 수많은 지혜가 담긴 잠언을 지었다고 말한다.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전12:9). 

성 로렌스는 프라이팬에서 계란후라이를 뒤집을 때도, 땅에 떨어진 지푸라기 한 가닥을 줍는 순간에도, 샌들을 수선할 때도 주님을 늘 생각했다. 그가 영적 자녀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제가 권고하는 바를 깊이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낮이나 밤이나 일할 때나 예배를 드릴 때나 심지어 가족들과 지낼 때도 하나님을 자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부인 가까이에, 부인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혼자 두고 떠나지 마십시오. 부인께서는 부인을 방문한 친구를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럴진대, 하나님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자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과 함께 죽으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받은 아름다운 소명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자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귀히 여기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 자매가 소화 데레사에게 물어보았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연히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니까요.” 소화 데레사는 예수님을 생각지 않고 3분 이상을 지낸 적이 없다고 고백하셨다. 우리의 모든 생각이 주님께 사로잡히면 순종도 쉬워진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우리의 모든 것 되신 주님을 자주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자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빠도 주님을 생각하고,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서도 주님을 생각하고, 모든 일에 앞서 주님을 먼저 생각하자.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주님, 밥을 먹을 때도 주님, 잠자기 전에도 주님, 모든 일상을 주님 생각으로 깊이 물들이자. 그러면 우리의 일생이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오늘이라는 그날그날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주님을 매 순간, 분초마다 자주 생각하며 살아가자. 그곳에 영적 승리의 비결이 있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소명은 주님을 더 자주, 더 많이 생각하며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