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순수한 첫사랑을 찾아서
하나님과 첫사랑에 빠졌던 시간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나의 믿음 주께 드려, 나의 삶이 주를 향해, 내 유일한 사랑 되신 주께 내 삶 드리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던 집 앞 골목길은 찬양을 부르며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리기 딱 좋은 장소였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와 교회를 오갈 때면 성경과 영적 도서들을 읽는 재미에 내리기가 싫을 정도였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키고 끄는 것도,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나에게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다.
 
분명 그때의 나는 어리고 미숙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마음이 자주 빼앗기기도 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지혜가 부족하여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성경의 인물들처럼, 신앙의 위인들처럼 믿음의 영웅이 되고 싶었고,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열심을 냈었다.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때보다 믿음이 성장했고 더 지혜로워졌다. 하나님의 집에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받았다. 그런데 어쩐지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은 점점 잃어가고 있다.
때로 무모한 결단으로 주변을 당황스럽게 하긴 해도 신선한 활기를 주었는데 이제는 안정적인 신앙생활이 더 중요하다며 과감한 결단을 유보한지 오래다. 과거에는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과 뜻이 달라 종종 부딪히곤 했는데, 이제는 최대한 충돌하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법을 잘 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 ‘아니오!’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사라져버렸다.

 
29살의 이용도 목사님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던 것일까. 그의 1929년 8월 23일 일기를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방황하던 나는 이제야 나의 길을 찾았나이다. 이제는 모든 심력을 다하여 그 길로 달음질할 따름이외다. 나의 기쁨은 거기 있겠나이다. 소망은 거기 있어요. 그 길이란 찾기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것인데 공연히 반생(半生)의 공(功)을 길가에서 낭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길이란 곧 예수님이 밟으신 길입니다. 나는 그냥 믿고 그 길로만 따라 나가려 나이다. 남이야 나를 가리켜 시대에 뒤떨어진 자라고 하든, 케케묵었다고 하든, 못난이라고 하든, 나는 이제 탓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도리어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을 무상(無上)의 영광(榮光)으로 압니다. 그것도 주님을 따르노라고 받는 욕이니깐.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남의 세상에 살아왔습니다. 너무나 남의 눈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아주 예수쟁이가 되렵니다. 미치도록 믿으려 하나이다. 이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곧 나의 생활이 되겠지요. 세상에서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속으로는 무기력한 생활만 하니 차마 못 견딜 노릇인줄 압니다. 나는 힘 있게 살려 나이다. 주님만 믿으며. 오 주여, 어느 지경까지든지 주님만 따라가게 하옵소서. 아멘.”
자신의 처음 사랑이 과연 어디서 떨어졌을까 고민한 끝에 이용도 목사님이 찾은 해답은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위신과 체면이었다. 주님이 주셨던 감동을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 ‘혹시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나둘씩 타협한 것들이 주님과의 뜨거움에서 멀어지게 한 원인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사막의 수도자가 아닌 세상 속에서 그분을 섬기는 종으로 부르셨기에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데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의 뜻은 하나님 중심적일 때보다 인간 중심적일 때가 많다. 만약 사람들의 눈치만 보다가는 인본주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 함정에 빠지면 우리의 신앙은 육적인 소욕과 쉽게 타협하여 안주하게 된다. 나 또한 이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서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예수님이 나를 기뻐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일까. 이용도 목사님은 그날 일기의 결심대로 살아내셨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예수님께 미친 예수쟁이’로 살았기에, 33년의 짧은 삶은 삶을 살았더라도 천국에서 한 점의 후회도 없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나의 삶을 언제까지 허락하실지 알 수 없기에, 바로 지금 단순하고 순수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사람들 앞에서 살던 나의 삶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다. 사람들의 칭찬이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해야 하리라. 만약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비난과 고통을 받더라도 감내해야 하리라. 그것이 주님이 가신 길일 테니.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