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용맹스럽게 갈 것이다

길을 따라 걷노라니, 나지막이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앉은뱅이 작은 꽃들은 제 색깔을 뽐내며 피어오르고, 산을 둘러싼 나무들은 누가 더 푸른지 경쟁하는 듯하다. 피곤에 쌓인 눈이 정화되는 것 같아 맘이 한껏 들뜬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초록색과 연두색의 향연이다. 가끔 지나다니던 길인데 오늘은 뭔가 색다르다. ‘, 초록빛이 이렇게 장엄할 수가 있구나!’ 감탄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무들이 예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는데 경이로울 만큼 아름답고 어엿한 자태를 뽐낸다.

깊은 감상에 젖어 있는 찰나 내 눈을 고정시키는 곳이 있다. 절벽을 이루듯 깎인 언덕배기 같은 곳에 서 있는 나무들. 뿌리가 보일 정도의 황량함. 거기에다 깊게 드리워진 그늘은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순간 필름처럼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너희들은 꿋꿋하구나! 비바람과 폭풍에 맞서 싸우며 쓰러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텼구나!’

나무들이 겪었을 혹독한 시간을 모르는 이들은 시각적으로 볼품없어 외면해 버렸거나, 차라리 저런 지경이라면 베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이로웠다. 하나님은 들에 핀 작은 들풀도 입히시고 먹이시며 생존하게 하신다. 하물며 볼품없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이 나무들도 존재해야 할 목적이 있지 않은가? 나무들이 어느새 나의 스승이 되어 내 귓가에 속삭인다.

난 아직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비록 위태롭게 보일수도 있지만, 지금에 만족한다. 온갖 비바람과 폭풍이 나를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난 쓰러지지 않았고 여전히 살아있다. 앞으로 더 큰 폭풍이 덮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더 용맹스럽게 싸울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날들 동안 서 있기 위해서. 그러니 너도 그렇게 풀죽어 있지 말고 비바람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워라. 그리고 힘을 내라.”

몇 해 전, 긴 한숨을 쉬며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기도할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푸른 초장에 어린 양 한 마리가 뛰어다녔고 예수님이 그 양을 보며 웃고 계셨다. 그 어린 양은 천진난만하게 그 넓은 곳을 뛰어다니며, 때론 예수님 품에 안겨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예수님은 양의 엉덩이를 밀어서 어디론가 보내셨다. 어린 양의 눈앞에는 높디높은 얼음산이 보였다. 어린 양은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그 산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눈물이 나고 힘들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 초원에서 예수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가 좋았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돌려 넓은 초원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이 서 계셨다. 예수님께 눈을 고정하고 발을 내딛으니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다시 얼음산을 바라보고 땅을 보며 걸을 때는 올라가지 못하고 미끄러져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예수님 어디 계세요?”

나는 항상 네 곁에 있다.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바라보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서 눈을 떼지 말고 언제나 나를 바라보아라.”

주님께서 연약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힘들 때면 이 광경을 떠올려보곤 한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여전히 미끄러져 힘겨워할 때가 더 많다. 쉽고 단순한 방법을 알면서도, 어려운 방법과 길을 선택해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연약함과 열악한 환경의 힘겨움에 눈물 흘리지만, 그 절망과 어려움 속에서 더욱 더 믿음으로 용맹스럽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될 것이다. 벼랑 끝에 서 있을지라도, 올곧게 서 있는 용맹하고 꿋꿋한 나무처럼 이 길을 가고 싶다. 울며 법궤를 싣고 벧세메스로 올라갔던 암소들처럼, 폭우와 눈보라로 눈물 흘리는 날이 많을지라도 용기를 발하리라, 나의 사명 다하는 그날까지.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