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되게 하시리라

40년이라는 시간동안 삶을 역행하며 은어처럼 사셨던 영적 스승이 천국으로 가신 10년이 되었다. 매순간순간을 마치 살얼음판 걷듯 하나님 영광만을 위해 죽기까지 헌신하셨던 . 삶이 속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1 어느 춥던 , 스승을 기리는 10주년 예배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발자취의 흔적을 좇듯 소박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스승은 지극히 소박하셨고 겸손하셨다. 삶을 사모하며 본받고자 했던 제자들은 초라하리만큼 소박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검소한 옷차림, 밤낮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느라 피곤한 얼굴들이다. 허나 모습속에는 스승이 남겨주신 신앙의 정신이 배어 있다. 비록 겉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스승을 따라 주님을 위해 , 평생을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한 삶이다.

10 동안 이런 시간을 가져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스승의 생전 영상과 교훈의 말씀을 듣다보니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땅에서 사셨던 인고(忍苦) 시간을 얼마나 행복해하셨던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삶을 사모하도록 하셨다. 세상과 역행하는 , 오직 주님 분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삶이 하늘을 수놓은 영롱한 별처럼 아름다웠다.

불꽃처럼 사셨던 스승을 본받고자, 예수님 분만으로 만족하기로 결단하고 행복하게 길을 걸어온 지도 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듯 나도 많이 변한 듯하다. 10 전만 해도 상상할 없었던 삶이 펼쳐지고 있기에 기적 같은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당장이라도 “주님 안에서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진심어린 답변을 있을까 스스로에게 반문해본다. 그러나 스스럼없이 말할 있다. “네, 행복합니다. 그리고 행복해질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이다.

애벌레가 누에고치 속에서 이리 꿈틀 저리 꿈틀거리며 시간을 보내듯, 나의 10년도 그랬다. 인생의 꽃을 피워야 20대를 지나 30대가 끝나가는데 여전히 제자리에 있듯, 완성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하지만 곱디고운 송이를 피우기 위해 씨앗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심겨, 다시 척박하고 거친 땅을 뚫고 나왔다. 작고 푸르른 새싹이 새로운 생명의 원동력으로 기지개를 펴듯 영혼이 속삭인다. ‘이제 꽃을 피워볼까?

좁은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들, 동정과 자기 연민은 함께 동행할 없다. 좁은 길에서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남는 것은 영혼 하나뿐이다. 너무 좁아 어느 누구와도, 어느 무엇과도 동행할 없고 혼자 묵묵히 가야만 한다. 오직 나와 함께 걷고 계신 예수님을 주목하고, 그분 때문에 행복할 있는 길이 좁은 길이다.

10년의 좁은 길이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중심의 행복을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을 위한 삶이었으니 말이다. 참된 행복은 결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좌절과 고독, 처절한 비움을 통해서만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 주셨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우셨나이다.(30:11)였다. 말씀을 받는 순간 지난 10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듯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아직도 여전히 실패가 두렵고, 외로움과 고독함이 익숙지 않지만 이제는 웃을 있다. 슬퍼도 주님 안에서 기뻐 춤출 있고, 악함과 더러움이 수치로 남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탈탈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올 주님, 모든 눈물을 받아주소서. 눈물이 기쁨으로 변하여 안에서 춤추게 하소서. 저의 부끄러움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기소서. 눈물을 닦고 기뻐 뛰게 하소서. 주님이 계시니 영혼은 언제 어디서나 안전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나의 축제가 시작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폭죽이 터질 것이다. 영혼이 기뻐 춤추며,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그날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거룩한 기쁨의 날을 아이처럼 손꼽아 기다린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