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6:3)는 예수님의 당부는 희생적인 수고로 걸출한 업적을 쌓고도 행여 자기 자녀들이 하늘의 상을 받지 못하는 억울함이 있을까 해서 내린 정겨운 훈계시다. 자기의 공적을 뽐내어 융숭한 대접을 받는 순간 천국의 상은 불 꺼지듯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깨달은 눈치 빠른 바울은 하늘 상급이 더 풍성해지기 위해 응답 받을 보수의 권리까지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9:18).



자기 공로 들추는 오만한 자와는 별로 감정이 좋지 않으신 하나님이시었다. 불가사의라 부르는 웅장한 바벨론 도성을 건설한 느부갓네살 왕이 궁 지붕을 거닐면서 ‘내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라.(4:30), 거드름을 피우는 순간 왕좌에서 쫓겨나 칠 년 동안 짐승처럼 사는 비천에 떨어진 것을 보았다.

절망에서 일어선 사람은 백 명이지만, 성공 뒤에 일어선 사람은 한 사람 정도란다. 구십구 명은 성공 뒤에 실패한 자들이다. 강성한 후에 율법을 어긴 르호보암 왕(대하12:1)처럼 힘겹게 이룬 공든 탑을 스스로 허무는 억장 무너지는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으레 하나님을 멸시하는(31:20) 사악한 전통을 아담의 후손들은 겁 없이 이어가고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16:18)라 일러 주셨는데도 천국백성까지도 발칙스럽게 왕자병에 걸려 있다. 하늘 성도들의 대환영 속에서 천군천사의 부러움을 받으며 받아 누릴 진기하고도 값진 찬란한 상을 어리석은 인간들은 뒤죽박죽 하찮은 것으로 바꾸고 있다(6:16).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 경건을 뽐내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일당을 ‘화 받을 자들’이라고 주님은 단정하셨다.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는 속칭 신령한 자들, 예언을 말해주고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을 가진 능력의 사자도, 재산을 줄여 가난한 자 찾아 구제하고 몸을 불 속에 용감히 던져 순교한다 해도, 단 사랑 없이 한 일이라면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모두 허탕이라는 선언이시다(고전13:1-3). 얼마나 억울할까? 하늘나라에 상달되지 못하는 신앙과 행위는 모두 가짜란다. 화려한 면류관이 증발당한 자들이다.

머리 숙여라! 안다 해도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다. 재벌로의 출세도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을 주셨기 때문이다(8:18). 풍성한 사역의 열매를 자랑하고 싶은가? 당신이 모르는 신실한 자들이 하나님만이 아는 토실토실한 실과를 지구촌 곳곳에서 익히고 있는 중임을 알아라. 방심할 때가 아니다. 자기는 사정거리 밖에 있다고 차별화하지 마라. 천국의 층계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순간의 실수와 유혹으로 곤두박질하게 될까 쉼 없이 겸허해야만 한다.

성자의 선상에 서도록 자신을 매몰차게 다루고 섬뜩한 마음으로 경계하라. 우쭐해지려는 경박한 자신을 스스로 가택 연금시켜라. 마지막 웃는 자만이 참 승자다. 예수님의 분신(分身-살과 피를 나누었으니)들이여! 주님의 유업에 상속자가 되려면 세상 물질과 영화는 일용할 양식만큼만 누려라. 예수님보다 상석에 앉지 마라. 고개를 더 숙여라. 주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주님의 극진한 돌보심에 오직 감사할 뿐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