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라
 
잘 알고 지내오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분은 한 기독교 단체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분이다.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단순한 믿음과 확신 속에 뛰어들었지만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한 지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독특한 성격을 가진 그로 인해 자신뿐만 아닌 많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제가 왜 그 사람 때문에 희생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예수님께 헌신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왜 그분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죠? 그분을 위해 뜻 모를 수고를 해야 할 때면, 저는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곤 해요. 그런데도 그분은 제게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니까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는 주제는 나 또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주 부딪히는 어려움이지만 아직도 잘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적당한 해결책을 줄 수 없었다.
다음 날 수도회의 정기모임을 맞아 대청소가 있었다. 내 소임은 수도원 주변 길가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시골 길이지만 많은 차들이 다니기 때문에 담배꽁초부터 큰 봉지까지 무단투기 쓰레기로 가득하다. 작은 비닐이나 병은 그래도 이해하겠는데, 굴 껍데기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먹다말고 버린 커피 잔에는 구정물이 가득 고여 악취가 풍긴다.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는 쓰레기를 줍다보니 마음속에 의문이 든다. 왜 남이 버린 쓰레기를 내가 치워야 하는가, 버린 사람은 기억도 못하고 있는데 왜 나는 땀흘려가며 치워야 하는가. 골똘히 생각하는데 문득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이 떠올랐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의 죄를 ‘대신’ 지고 간 십자가였다.
그제야 어제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했던 희생의 의미가 깨달아졌다. 내버려놓고 처리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또한 앞으로 버려질 수많은 죄의 쓰레기들. 그 모든 악취 나는 것들을 예수님은 전부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하신 기도는 원래 본인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였다. 가치를 알아주는 자들을 위한 수고는 결코 참 희생이 아니다. 난 자리에는 오물이 가득하면서도 언제나 큰소리치는 사람의 뒤를 말없이 닦아줄 수 있을 때라야 참 희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말이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는 평생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았다. 빈민굴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장결핵 환자의 용변을 도와 밑을 닦아주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도와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밑닦기 신학’의 실천자였다. 그러나 가슴 뿌듯한 감사의 보답만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깡패들은 매일같이 칼을 들고 가가와 선생을 위협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달려들었다. 돈이 없을 때는 그가 입고 있던 옷까지 벗겨 놓아 한동안 옷이 없어 고생한 적도 있었다. 심하게 매를 맞아 온 몸에 멍이 들고 이까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때 친구 목회자가 문병을 왔다 그의 참혹한 몰골을 보고 분개했다. 버릇없는 깡패들에 대응하지 않는 가가와 선생이 이해가지 않았다.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라고 하기엔 그는 너무 비참해보였다. “자네는 그 나쁜 깡패들을 왜 그냥 놔두는 건가! 경찰에 고발하여 혼을 내주지 않고 무얼 하는가?”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가와 선생은 정색을 하며 벌떡 일어나 “자네는 성경을 어떻게 보나?”하고 반문하였다. 그의 성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은 없었다.
“참된 기독교란 생명의 창조에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각오 없이는 새로운 창조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인류를 깊이 사랑하여 고통과 오점, 착취가 없는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죄인과 원수도 사랑하는데 이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기쁨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길을 택하는 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를 받아 짊어지십시오!”
냄새나고 역겨운 나의 죄(쓰레기)를 지고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내가 희생하지 못할 대상은 없다. 그러니 마음속에 정죄와 비난의 손가락을 내리고 십자가를 바라보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흘린 물 한 방울 대신 닦아 주어도 좋다.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길가에 흘리고 간 휴지 한 점을 주워도 십자가를 생각한다면 그 희생은 나와 우리를 새롭게 할 것이다.


-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