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우리가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본회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고 한 길을 갑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길을 알고 계십니다.

시편 34편은 올해 나에게 주신 말씀이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가드 땅으로 들어갔다. 가드는 소년 다윗을 유명한 장수로 만들어 준 골리앗의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은 곧바로 다윗을 알아보았고, 그가 사울보다 뛰어난 장수라는 노래, 즉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불려 졌던 그 노래를 상기시킨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두려움에 휩싸인 다윗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함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처절한 절망의 상황에서 그가 피할 영원한 피난처는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찬양하는 시다.

뇌세포가 점점 죽어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아이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정말 지옥을 경험하는 고통처럼 느껴졌다. 욥기를 묵상하면서 고통의 시간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왜 하나님은 욥이 가진 재산, 자녀, 그의 의와 덕과 명예와 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까지 모든 것을 앗아가셨을까? 그리고 왜 주님은 남편과 아이에게 불치병을 허락하셨을까?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아이만이라도, 아이만이라도 건강하게 해주시지 꼭 이렇게 하셔야 했을까? 무수히 주님께 외쳤던 질문이다.

주님께 반항하면서도 주님만이 치유자이기에 매달렸던 수많은 시간들조차 외면하고 오랫동안 무응답으로 침묵하시는 주님께 깊은 좌절을 경험하면서 세상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하니 주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41:14).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드렸던 다윗의 고백처럼 소망 없는 버러지 같은 나를 도울 이시는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시다. 깨어지고 부서진 자리에 주님으로 채우는 것만이 인생의 소망임을 깨닫게 하셨다. 깨어지고 부서져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길을 가다 아이와 함께 손잡고 가는 엄마를 보면 내가 저 분보다 뭐가 못나고 부족해서 하는 섭섭함과 야속함이 올라온다. 주위 분들이 팔자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면 서러움이 밀려온다.

우리 가정에 관한 것을 드러내려고 하면, 상처에 덧이 난 것처럼 쓰리고, 타인에게 동정심을 받거나 영적 자랑을 한다고 손가락질 받을까 하는 맘이 든다. 고난과 시련의 찬양을 선곡하면 같이 우울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피하고 싶다. 20년 가까이 간병을 하다 보니 간혹 주위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자기 의와 교만에 빠진다. 착하게 행동해야 된다는 윤리의식이 있다.
아프다고 소리도 낼 수 없는 남편과 아이를 보며 펑펑 운다. 인내의 한계를 느낄 때면 제 건강을 그들에게 주시든지, 아니면 셋을 함께 아픔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 데려가 달라고 주님과 실컷 싸울 때도 있다. 20년 가까이 가족이라고 하지만 주님이 맡겨주신 작은 자 옆에서 간병하느라 잠도 편히 잔 적 없고, 제 때 식사한 적 없고, 남들이 소소히 누리는 가정의 단란함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대로 남편과 아이를 데려 간다면 지금까지 수고하고 헌신한 삶이 억울하다고 따진다.

‘주님, 지금까지 제가 어떻게 살았는데 그러실 수 있어요?’ 하나님은 고난 앞에서 나의 민낯을 드러내신다. 본 모습을 보여주신다. 주님을 거역하고 반항하는 것, 나 자신을 의인으로 포장하고 상대방을 적대하는 마음들, 이 모든 것이 사실 나를 보호하고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깨어지고 부서져야하는 더러움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고난과 문제 속에서 억울하고 분하고 외로운 상황을 만날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은 죄와 정욕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추한 모습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세상에 속한 욕심, 주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야망들,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는 이기심, 내가 저들보다 옳고 바르며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 판단과 정죄의 손가락질 이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시려고 주신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죽음과 연합되는 죽음을 경험하도록 인도하시는 손길에 내 의지를 굴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셔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만 남아있어야 한다.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의 유한함을 절절히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하며, 공의로 다스리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34:8).

올 한해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도록 부르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