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일본의 야마무로 꿈베이는 마귀는 4가지 전법으로 사람들로 범죄케 한다고 그 술책을 폭로한 바 있다.

첫째, 누구든지 하니까
세상에서 살려면 처세술을 따라야 한다. 믿는다는 구실로 고지식하게 처신하다가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사업의 실패자가 되면 누가 책임져 주겠는가. 집사도 장로도 심지어 어떤 목사까지도 그렇게 처신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한 위로가 되어 경고하는 양심과 성령의 음성을 쉽게 억누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넓은 길 멸망의 문으로 가는 자는 많고, 좁은 길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적다고 하신다. 좁은 길, 진리의 길만을 걸으라 당부하신다. 천 명의 사람이 천 말을 하고 만 명의 사람이 만 말을 할지라도 신앙의 방법을 고수해야 한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둘째, 이까짓 일이야
남자가 그렇게 소심하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복음에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닐 텐데 하고 대장부의 객기를 부려본다. 그러나 에서가 춥고 배고프다는 이유로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버린 그 작은 일이 얼마나 천추의 한이 되었던가. 작은 물줄기가 엄청난 댐을 구멍 낼 수 있고, 벽돌 한 장 빠진 담벽에 뱀과 쥐가 침투하여 화려한 집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왜 모르는가. 작은 일 같지만 기도하는 일, 예배하는 일, 전도하는 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 그 어떤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그 신앙은 병들게 된다.

셋째, 이번 한 번만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군대 간 집의 초상은 으레 있는 일)라는 격려 글귀가 함정이 될 때가 있다.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다진다. 그리고 “이번 한 번만 하고 그만 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윗의 한 번 실수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낳았는가? 저지른 간음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를 죽이고 왕자간의 성폭행과 살인 사건, 아들 압살롬이 부왕에게 칼을 들이대는 참사 등 그 얼마나 끔찍했던가? 한 번 죄지으면 그 꼬리표는 일생 붙어 다니는 법이다. 한 번의 쾌락을 맛보려다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고매한 인격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한 번 실수라도 물어뜯는 독사임을 알아야 한다. 한 번의 죄까지도 용납하지 않는 냉혹함이 있어야 한다.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잠9:17). 죄는 언제나 황홀한 매력을 풍기며 달려드는 법이다. 지도자의 경우는 한 번의 넘어짐이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KO가 되는 수가 많다.
넷째,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
열심을 내어 신앙 생활하는 것, 충성하는 것, 주께 바치는 것, 전도하는 것 다 좋으니 하라고 마귀는 말한다. 단, 차차 하라고 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이고 경제 사정도 풀리지 않았고 나 없어도 아직은 할 사람이 많으니 다음에 하라고 위로해 준다. 이 속삭임이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오늘’ 또는 ‘이 시간’이다. 지금 미루는 일은 영원히 미루는 일이다. 인간은 내일 일은 모른다. 오늘 일어서지 않으면 내일은 일어설 힘이 없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벧후2:19). 한 번 넘어져 농락당하면 마귀는 종처럼 부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종이여! 마귀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시험을 이겨야 한다. 견고한 성처럼 숨 거둘 때까지 정결한 하나님의 종으로 우뚝 서 있어야 한다. 할렐루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