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자기 사랑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

 

성경은 예수님을 좇는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온유’와 ‘겸손’을 말씀한다. 여기에 더하여 시험의 환경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인내’다. 모든 상황 가운데 온유와 겸손이 요구되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인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온유하고 겸손하려면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다. 인내해야만 하는 그 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결국 그 인내로 인하여 단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야고보서 1장에서 더 자세히 표현되고 있다. 모든 시험의 환경 가운데 인내하고 또 인내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히 이루는 단계에 다다르면 ‘완전하고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로마서에서는 환난과 연단의 연결고리를 인내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환난, 고난, 시험은 고통스러운 것인데, 단지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을 연단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연단이란 단련, 제련의 의미로써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백성의 모습에서 변화되어 천국백성답게 만들기를 원하시는데, 그러려면 연단을 받아 천국에 가져갈 수 없는 지옥의 불순한 것들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철 칼을 만드는 제련의 예를 들자면,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용광로의 온도가 1539도를 넘어야 한다. 뜨거운 불에서 녹은 철은 여전히 불순물이 많고 경도(단단함)가 부족하므로 뜨겁게 달구었다가 망치질을 한 후 물에 급냉시키는 작업을 무수히 반복하여 제련을 한다. 칼과 같은 무기뿐 아니라 밭에서 사용하는 호미마저도 옛날 대장간 방식대로 하면 20번의 담금질과 천 번 이상의 망치질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대장장이시고, 우리가 철이라면 이러한 제련의 과정을 통해 대장장이가 원하는 제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련(연단) 과정이 어찌 순탄할 수 있겠는가. 이 연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내다. 인내 없이는 연단 받지 못하고 연단 받지 못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21:19). 그래서 마지막 때의 환난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인내하기를 원하신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1-12). 인내는 시험과 환난을 통과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동안 PC방 아르바이트생 살인사건 때문에 온 사회가 떠들썩했다. 범행동기가 단지 불친절한 응대에 기분 나빠서였는데, 잔인하게 얼굴과 목, 막는 손을 수십 차례 찔러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 가해 상처만 봐서는 아주 깊은 원한관계에서나 볼 법한 잔인함이었기에 더욱 큰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자존감이 약하고 방어 기제가 강하여 그것을 폭력적인 언행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갈수록 세상은 이런 묻지마 살인이나 폭행 등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대환난이 다가올수록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작고 사소한 것도 좀처럼 참지 못하고 폭력적 행동을 취하도록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러할진대, 대환난에 다섯 번째 나팔이 불어지고 지옥의 모든 악령들이 일시로 풀려나와 사람들의 배후에서 다섯 달 동안 역사한다면 세상의 모습은 어찌될 것인가. 지옥이 현실 세계에서 펼쳐질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앞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오늘 우리가 정신 차려야 한다. 악령들이 가장 틈타기 쉬운 유형은 잘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중심적인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는 사람들은 그날에 마귀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은 어찌하든지 오늘 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인내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다. 지금부터, 나부터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참고 견디는 훈련, 남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억울한 일 당하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에, 하나님만 아시면 되기에 우리는 인내하려고 애써야 한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는 격언을 잊지 말자. 인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내가 인내한다고 남이 그것을 알아주거나 쉽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영혼은 아름답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인내의 목적은 자기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인내는 손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투자다. 이제는 남을 위한답시고 엉뚱한 일을 많이 하기보다는 자기 영혼을 위한 것에 투자해보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5:11).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는 자는 인내를 잘 하게 되어 있다. 좋은 것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기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