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용사들이여, 마귀의도전에 응전하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삶의 모든 면에서 도전을 받고 그에 대해 응전을 하면서 살아간다. 삶의 끝없는 투쟁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연구에서 문명의 성장은 계속되는 도전에 성공적 응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도전과 응전은 인류의 역사나 한 개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도전과 응전

중국 황하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살아있는 역사적 교훈이다. 황하강은 여름철이면 살인적인 더위와 홍수로, 겨울에는 혹한으로 인한 시련과 절망의 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황하의 매우 혹독한 도전에 지혜와 용기로 응전하여 황하문명을 이룩해냈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원래 풀 한 포기 없는 언덕과 돌밭에 열병이 들끓는 광야였지만, 로마인들은 전국을 통일하고 나아가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이것은 로마인들이 거친 광야의 도전을 극복하고 이겼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여 홍수를 이루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태양력, 기하학, 천문학을 발달시켰다.

지금의 인류도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데, 바로 사단의 도전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정치, 언론, 방송, 문화, 교계의 헤게모니를 잡고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로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이슬람과 손을 잡고 교회의 존립을 흔들고 있다. 한국교회도 안으로는 번영신학의 범람으로 교회가 세속화 되었고, 교파 분열과 신앙공동체 안의 불화와 반목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고 밖으로는 좌파들의 파상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은밀했던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교권이 실추되고 환멸을 느낀 성도들이 교회에 등을 돌렸다. 교회가 빛을 밝히지 못하면 세상은 급속히 어두워지고 짠맛을 잃은 교회는 짓밟히기 마련이다. 심지어 개독교라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 모든 배후에는 마귀가 역사하여 교회를 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스가랴 13:8,9에 보면, 이 온 땅에서 2/3는 멸절하고 나머지 1/3은 구원을 받는데, 1/3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불 시험 가운데 던져 연단한다고 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의 모형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율법을 준수하는 훈련을 받았듯이 말이다. 이렇게 성도들이 말씀을 지키는 영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 마귀는 꼭 필요하다. 연단 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것이다.

마귀의 도전은 천지창조 직후부터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과 단절되어 낙원을 잃어버렸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하며 하와의 탓으로 돌려 부부애를 깨뜨렸다. 서로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랑해야지,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 탓하다가 많은 가정이 깨진다. 마귀의 도전이다.

형제애도 도전을 받았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동생을 향한 질투와 미움이 되어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마귀는 부부나 친 형제, 부모와 자식, 친구 등 어디든 어느 관계든 간에 도전장을 던진다. 교회나 신앙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마귀는 끊임없이 구성원들 간에 불화와 반목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파로 나눠져 싸우고, 신앙단체에서도 동역자들 간에 서로 지나친 비판을 하다가 단체의 존립마저 흔들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지만, 서로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고 남의 탓을 하며 정죄하기 바쁘니 어찌 그런 단체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랴.

 

말씀과 기도로 응전하라

마귀의 도전에 말씀과 기도로 응전해야 한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에게 여러 가지 도전이 다가올 때 남을 탓하고 원망한다면 고통과 불행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 앞에 빵 대신 벽돌을 던져 놓기도 하신다. 어떤 이는 원망으로 그 벽돌을 걷어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벽돌을 주춧돌 삼아 아름다운 집을 짓기도 한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은 큰 고통을 겪었지만, 원수를 선대하고 사랑으로 승리하여 위대한 성군이 되었다. 반면에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에도 부하들 눈치 보느라 제대로 순종하지 못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도 백성들이 겁을 먹고 흩어지자 자신이 번제를 드리는 망령된 행실을 범하고 말았다.

이렇게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응전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삶뿐 아니라 단체나 국가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 마귀의 직접적인 3번의 시험을 말씀으로 응전하여 승리하셨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말씀에 순종하여 순간순간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는 사자와 같이 도전해오는 마귀에게 응전을 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하다. 고난이 내 살을 찢고 뼈를 깎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면 결국 승리하게 되리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리라약속하셨다. 인생에 다가오는 마귀의 도전에 잘 응전한다면 주님께서 큰 유익과 축복을 주실 것이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음을 보라. 당신은 어떻게 마귀의 도전에 응전하고 있는가. 지금 나라 안팎으로 교회 안팎으로 마귀는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우리 가정과 단체와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내가 응전을 잘하면 내 가정과 교회와 단체가 살아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기도하고 겸손과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의 밝은 빛을 추구하는 믿음의 용사들이여, 우리가 신령한 밑거름 되기를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지 깊이 생각하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