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기쁨


행복하지 않은 나라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는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으로 최근에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에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잭(Prozac)이란 약품은 270억 달러(250조원)에 달하는 경이적 매출액을 올렸다고 한다. 이는 자동차 300만대를 팔아서 얻는 이익과 같은 금액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결코 행복하거나 기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높은 청년 실업률, 저조한 출산율, 급격한 이혼 증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개선되지 않는 공직자 부패지수, 노년층의 노후 문제, 청소년 범죄 등의 문제들이 연일 골칫거리로 뉴스를 장식한다. OECD 국가 중 행복지수도 매해 바닥을 치고 있다. 뉴스를 보면 매일 섬뜩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가해자의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를 움직이는 감정이 허무라는 기사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부정적이고 우울한 뉴스 기사를 접하고 주변의 여론들을 듣다보면 우울이나 허무, 스트레스가 결코 남의 일만도 아닌 것도 같다.

영국 속담에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이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일 년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평생을 행복하려면 이웃과 사귀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이들이 소유하기 위해 애쓰며 일생을 좇아 헤매는 것들이 기껏해야 일주일, 한 달, 길어야 일 년의 행복을 안겨 준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인간의 삶은 참 별 것 아니지만, 신학적으로 접근하면 인간의 하루하루는 예수님의 목숨을 내어주고 얻어진 가치로운 삶이다.

 

기쁨을 찾아서

신약 성경에는 기쁨이라는 헬라어 카라132번 나오는데, 이는 죄와 싸워 이긴후에 오는 즐거움 즉 희락을 의미한다. 보통의 즐거움인 쾌락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희락의 깊은 의미를 참 쉽게 설명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3:1). 명쾌하고 간결하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4:10).

모든 기쁨의 이유가 주님 안에서로 귀결된다. 바울 서신 중에 주 안에서’ ‘예수 안에서라는 말이 무려 132회나 나오는데, 우리가 누리는 주 안에서의 기쁨은 구원 얻은 기쁨, 절대적인 기쁨이라 말 할 수 있다. 이 절대적이고 위대한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늘날 우울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우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죄와 싸워 이긴 후의 기쁨을 자주 맛보면 그 즐거움의 의미가 보다 가치로움을 말하고자 함이다.

희락은 무엇인가 잘되고 물질을 얻고, 명예를 얻는 쾌락 같은 것이 아니다.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거칠고 사나운 환경과 싸워 이긴 기쁨을 말한다.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천국적인 기쁨, 주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론적인 기쁨, 닫히고 묶였던 것들이 풀어지는 기쁨이다. 죄 문제와 지치도록 싸우다, 나의 악습과 지치도록 싸우다가 눈물로 지새우는 그 밤도 주님 안에서 누리는 정화된 기쁨이다. 즐겁고 기뻐서 웃음을 웃는 순간만이 기쁨이 아니다.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를 용서하여 얻는 평안도 희락이고, 은밀히 선을 행하고 주어지는 감사함도 주님 안에서의 희락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고 말씀한다. 성령께서 감동케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시고, 사랑실천 할 마음과 의지로 인도하시니 희락을 추구할 수 있다. 헬라어에 안에라는 전치사는 인격적이고 가까운 관계를 뜻한다. 성령님과 인격적이고 가까운 관계에 있으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그분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할 때 희락을 경험할 수 있다.

사는 동안 주어지는 모든 일들이 꽃향기처럼 다 기쁘고 좋을 수 없다. 생로병사의 한가운데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은 때론 죽음이 더 낫다고 여기기도 하는 고통스런 순간들을 견뎌야 한다. 그 속에서도 이유 없이 즐겁고, 이유 없이 눈물짓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눈물로 영원까지 이어지는 은혜로 살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잠시 당하는 고통이다. 잠시 지나가는 이 광야 길이다. 나그네와 행인은 소풍 나온 사람처럼 즐거워 할 이유가 있다. 오래 집착하거나 오래 머무르며 수고를 하지 않고 가장 단순하고 즐겁게, 삶의 의미를 주님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깊어가는 기쁨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노래하며 행복한 이유를 세상에 외쳐야 한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를 위해 빼곡히 적어 놓으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과 거룩한 사랑의 말들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며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사는 우리는 매일 울어도 가장 행복하고 기쁜 사람들이다.

목숨을 버리고자 하면 얻고, 죽고자 하면 사는 역설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이 깊어지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사도바울의 말처럼 날마다 죽으면서 철이 들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잘되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영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던 날부터 성령께서는 함께 하시면서 동행하시는 가운데 필요한 기쁨, 필요한 감사, 필요한 은혜, 필요한 찬양을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목표를 향해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돕는 은총이 없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다. 자아가 깨어지는 것도 도움을 받으면서 깨어지는 것이다. 그 자아가 하나하나 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고난을 주시고, 자아가 하나 깨어지면 연거푸 고생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 풀어주시고 그러면서 우리 안에는 기쁨과 평강,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꾸 우리를 키워나가시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고난만 주셔서 높은 경지에 올려놓으려고 하시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 생길 때는 당할 즈음에서 피할 길을 주셔서라도 가볍게 해주시고, 기쁨과 즐거움과 감격과 평안과 위로를 받게 하신다. 그러니까 결코 한평생 평탄할 수만도 없고, 한평생 고생길을 걸어야 할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성자들이라도 하나님이 계속 고난을 주시지 않았다. 고난을 주셨다가 풀어주시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때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시면서 진행하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열심히 기도하고 간절하게 매달려서 영적인 기쁨을 자주 경험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영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순간순간 돕는 은총,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우리에게 있으니 그것을 믿고 바라면서 나아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적으로 빨리 성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도 우리가 기뻐할 이유는 충분하다.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세대를 향해, 기뻐할 이유를 말해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내 남은 생을 주님을 기뻐하는데 다 사용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가을, 주님에게 받은 사랑과 은총에 고통도, 질병도, 크고 작은 우리 삶의 환난들도 한 번 더 기뻐하며 감당해 보도록 하면 좋겠다.

우리가 주의 것이니 주의 앞을 떠나 어디로 갈까. 가장 즐겁고 행복한 곳, 영원히 머물 그곳. 주님으로 기뻐하는 삶은 영원하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