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과 지혜로 얻는 황금알
성경은 인간 욕심의 끝을 사망으로 단죄한다. 하나님과 단절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 욕심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이다. 소통과 공감 없는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가정이나 교회, 단체는 욕심으로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관계에서 소통의 부재는 언제나 불행하며, 돈과 명예로 쌓은 찰나의 기쁨은 허무할 뿐이다.

거위와 황금알

이솝우화에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농부는 자신이 키우던 거위가 번쩍이는 황금알을 낳자, 처음에는 놀랍고 당황했다. 하지만 매일 계속되었고 농부는 굉장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농부는 더 탐욕스러워지고 성급해졌다. 매일 하나씩 낳는 황금알을 기다릴 수 없어서 한꺼번에 황금알을 얻고자 거위를 죽이고 배를 가르지만 뱃속에 황금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농부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며 살아간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스티븐 코비 박사는 내가 얻고자 하는 결과(효과성)를 생산물(황금알)과 생산 주체(거위) 사이의 절묘한 균형으로 설명했다. 만일 우리가 거위를 무시하고 황금알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황금알을 얻으려는 목표 없이 단지 거위만을 돌본다면, 머지않아 거위를 잘 돌보는 데 필요한 동기를 잃어버리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생산물과 생산 주체 사이의 균형은 우리의 생활에 덕과 지혜라는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가령 가정에서 엄마가 딸에게 방을 깨끗이 청소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딸이 몇 번은 잘 하겠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고 고함을 치고 위협하지만 결과는 더 악화될 뿐이다. 진정한 마음의 공감 없이 억지로 하게 되니 자녀는 불평하고 반항도 심해지다가 그것이 쌓이게 되면 마침내 엄마와 딸 사이에 행복은 멀어질 것이다.

만약 엄마가 생산물과 생산 주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덕과 지혜가 있다면, 딸아이는 잔소리가 없어도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을 깨끗이 청소할 것이다. 어떤 일이든 어떤 단체이든 소통과 공감과 배려가 결여되면 가장 중요한 상대방의 마음을 잃게 되고 결국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보다는 원하는 결과(황금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불화와 반목을 거듭하다가 아예 원수관계가 되고 만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그 결과를 창출해내는 주체를 잘 보살필 줄 아는 지혜와 덕이 필요하다. 누구도 일방적인 명령과 지적만으로 상대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스스로 고치겠다는 각성과 깊은 공감, 감동이 있을 때 가능하다.

생산물과 생산 주체 간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듯, 황금알에 눈이 멀어 거위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으려면 덕과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덕과 지혜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는 말씀처럼 소통과 공감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덕과 지혜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 섬에서 바나바 이후 5백년 만에 요한이라는 성자가 났다. 그는 본래 큰 부자였으나 처자식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인생무상을 깨닫고 주님께 남은 인생을 바쳐 거룩한 생애를 보냈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교회에 처음 부임할 때 제직들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내가 섬길 주인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 오시오.” 하였다.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니까, “우리 주님이 섬기시던 가난한 형제들이 곧 내가 섬길 주인입니다.” 했다. 그래서 조사한 결과 알렉산드리아 지방에는 생계가 막연한 빈자들이 7,500명이나 됐다. 그가 재직해 있는 동안 빈민구제에 얼마나 힘썼던지 호응하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생겨, 나중에는 구제받을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다.

한번은 요한 감독 아래에 있는 두 서기가 서로 주먹질하면서 싸웠다. 이는 심히 부덕한 일이라, 불러다가 두 사람 다 책벌하였더니 한 사람은 순복했으나 다른 이는 끝까지 원망하면서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어느 주일, 성찬식을 거행하던 요한은 네 형제가 너를 원망하는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사화하고하신 말씀이 생각나 교인들에게 기도하며 기다리도록 하고 자기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기를 불러다 앉히고는 감독의 가운을 입은 채 서기의 발 앞에 엎드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내 형제여, 용서하시오.” 하며 사과했다.

그때까지 완악했던 서기는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만 땅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요한은 울고 있는 서기를 껴안고 눈물을 씻어준 뒤 함께 성전에 데리고 와 성찬식을 계속했다.

또 하루는 요한 감독이 지방 총독과 의견 대립으로 다툰 일이 있었는데, 흥분한 채 집으로 가 있는 총독에게 저녁 무렵에 편지를 써 보냈다. 편지에는 지금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라는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분을 품어도 죄를 범하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4:26)는 말씀이 떠올랐다. 요한 감독이 먼저 편지로 화해의 손을 내밀고, 총독은 그의 겸손에 깊이 감동되어 자기 잘못을 사과하고 화해하게 됐다.

빈민을 구제하는 일에 다수가 동참하게 된 것도, 고집쟁이 서기와 교만한 지방총독의 마음이 풀린 것도 모두 요한 감독의 덕과 지혜에 공감하고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지혜와 지식을 갖추어도 덕이 부족하면 진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소유인 학벌과 재능과 용모, 재산과 권력과 지위, 지식 때문에 나보다 못한 상대방을 비난하는 교만과 독선과 아집에 지배받기 쉽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위신과 자존심과 체면에 상처받는 일이 반복되면 아예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이렇게 덕과 지혜가 부족하면 상대에 대한 공감과 소통과 배려가 없어지고 인간관계가 깨어지게 마련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2:4). 주님께서는 우리가 교만과 독선과 아집이 깨어지고 덕과 지혜를 골고루 갖춘 일꾼이 되기를 원하신다.

자기 눈의 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가 더 크게 보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점점 더 야위어가고 마침내 죽게 될 것이다. 황금알을 얻으려면 먼저 거위를 잘 돌보아야 한다. 그러면 매일매일 영적으로 부요한 황금알을 얻는 부자가 되고 주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