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충분한 이해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영성’(靈性)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영성훈련, 영성신학, 영성목회, 영성세미나, 영성생활, 바울사도의 영성, 프랜시스의 영성, 영성의 메아리, 영성약혼, 영성결혼, 영성의 밤 등이다.

그러나 영성에 대한 견해가 혼잡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시원스럽게 정돈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올바른 견해인지 쉽게 분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영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말미암아 영성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 영성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영적인 목표와 방향과 가치관이 성경을 중심으로 바르게 정돈되어 있지 않으며, 특히 기독교 역사 가운데 모범적으로 영성생활을 하였던 탁월한 영성지도자들에 대한 견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성생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지 못하고 있다.

영성이란 육성(肉性)의 반대 개념으로서 영적 성품을 말한다. 영적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성이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과 생활을 주장하는 가운데 주님의 형상을 빠르게 닮아가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게 되면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용기와 정직과 겸손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열매들 즉 빛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고 영적으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 선과 악,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하나님 중심적인 것과 자기중심적인 것, 상급 받을 수 있는 행실과 상급 받을 수 없는 행실 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영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

영성이란 육성의 반대가 되는 말인데, 영적 성품 혹은 성향을 가리켜 말한다. 영적 성향, 영적 성품 그 반대는 육적인 성향, 육적 성품이다. 하나는 빛, 하나는 어두움이다.

선으로 악을 이겨라, 왼편 뺨을 때리면 오른편 뺨을 돌려대라, 속옷을 빼앗고자하면 겉옷까지 내어주라,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동행하라,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오래참고 온유하며, 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런 말씀들이 전부 다 하나님의 영성으로부터 나온 말씀이다. 빛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 말씀도 육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성경에 보면 옛사람과 새사람이 나온다. 새사람은 영성의 사람이고 옛사람은 육성의 사람이다. 성령의 열두 가지 열매는 영성이고, 수군수군하고 혈기내고 거짓말하고 교만한 것은 다 육성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를 로마서 7장과 8장에서는 육신이라고 하였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사망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으므로 영성과 전혀 타협할 수가 없다. 육신에 속한 생각이 곧 육성에 속한 생각이다. 7가지 죄성과 정욕, 결점은 모두 육성에 속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을 육신에 속한 자, 심령의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을 신령한 자, 이렇게 크게 두 종류로 구분을 하였다.

신령한 자들을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이러쿵저러쿵 수근수근하고 비방하겠지만 어떻게 주의 마음을 알아서 판단하겠느냐. 신령한 자들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전2:15-16)고 한 것처럼, 그들은 판단을 해도 잘못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령한 사람들은 심판대에 갈지라도 심판받을 것이 없다. 또한 그분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로마서 81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죄 문제가 다 해결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 7장에 있는 성도들은 계속 정죄 받는 모습이 나타난다.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19-20). 그래서 로마서 7장 경험에 있는 분들을 육신에 속한 자,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간 분들을 신령한 자라고 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보면 영성이 무엇이고 육성이 무엇이라는 것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영성을 개발하자는 것은 바로 밝은 빛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이 발전하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음식이 맛있다, 잘 만들었다, 또 먹고 싶다.” 이런 표현들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육성을 따르는 생활, 육신에 속한 생활이다. 아무리 훌륭한 부흥강사님이고, 목사님이라도 그런 말을 하고, 그런 냄새를 풍기면 그 순간만은 육신에 속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시는 분들은 무조건 육신에 속한 생활에 빠지기가 쉬운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한다면, 다 영적인 일로 간주해주시고 하늘에 가서 상급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탐하는 마음으로 맛있다, 맛없다라고 하는 것은 상급이 없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다. 어쨌든 잘 대접을 해야 하니까. 예를 들어 자신이 먹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 떡을 사다가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고자 한다면, 이웃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상급이 되는 것이고, 영적인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서 대접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따라서 순간순간 육성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철저한 영성생활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고자 할 때 내가 좀 손해보고 희생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에 합당한 영광과 상급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