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삶

에녹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진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는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는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부족 사회에서는 창지기가 부족을 지키며 이끌었다고 합니다. 고대에 부족 간 전쟁에서 창지기가 죽으면 그 부족은 멸망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짓게 하신 것은 그의 죽음은 곧 인류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도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로는 늘 깨어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죽음은 곧 인류의 멸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므두셀라가 다칠세라 아플세라 마음의 끈을 동이고 근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은 365일 늘 깨어 있는 삶을 살다가 향년 365세에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동행하다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걷다. 생활하다의 뜻이 아닙니다. 원문에는 히트할레크라는 강조재귀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특이한 표현법이 있는데 동사가 7가지 형태로 쓰이고 이 중 하나가 강조재귀형입니다.

그 뜻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그 뒤를 따라 걷게 만들다. 생활하게 하다의 뜻입니다. 곧 하나님의 뜻이 에녹의 뜻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그가 싫어하는 것이 되었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동행하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에녹은 일평생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간 인물입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243세에 아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아담의 나이 930세였습니다. 므두셀라가 300세 되던 해 아버지는 하늘로 승천하시고, 369세에 아들 라멕이 노아를 낳습니다. 노아는 위로자, 평안을 주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악으로 관영하여 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에 노아의 경건한 삶은 산 위의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어둠은 그 빛을 멸시하고 싫어하였습니다. ‘심판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므두셀라의 삶은 하나님의 시계와도 같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장과도 같았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곧 인류의 심판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얼마나 큰지 므두셀라는 자그만치 969세를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1000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은 인류가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기를 천년을 하루처럼 기다려주신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969세 되던 해가 노아의 나이 600! 그 해 217일에 하나님은 홍수 대심판을 감행하십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에 태어나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2000년 전에 예수님을 통해 경고장을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대환난 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가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4:21)고 큰 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무후무한 대환난! 홍수 대심판을 경고하시고 1000년을 기다려 주셨듯이, 대환난을 경고하시고 2000여 년을 기다려주고 계시는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다려주셨는데 더 기다려주시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시려는 은혜일 뿐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24:7).

나라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과 재난의 소식들이 마지막 때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사람들이 다 잠자고 있을 때 도적이 소리 소문 없이 왔다 가듯이 예수님도 우리가 영적으로 다 잠들어 있을 때 예고 없이 불현듯 오실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에녹이 늘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살았듯이 하루하루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뜻이 펼쳐지고 접어지는데, 그 수많은 뜻과 이유들이 주님과 일치한다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와 동행하는 생각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