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빛을 비추어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들춰지고 보도되어 질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고 속이 상합니다. 세상의 빛으로 산 위에 우뚝 서야 할 교회가 점점 빛을 잃고 침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깨우는 방망이로 사용하시는 듯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밖에 버리어 사람들의 발에 밟힐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쩌면 악으로 치닫는 세상 속에서 갈 바 몰라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우리를 향한 무언의 목마른 탄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속에서도 낯부끄러운 사건들이 수두룩하게 보도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왜 이런 치부까지 드러냈을까 하는 의아함도 일어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만연했던 동성애와 성적 문란, 롯과 두 딸의 근친상간 이야기, 레위인 제사장이 기생을 첩으로 얻어 벌어지는 베냐민 지파 몰살 사건 등.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인간의 현주소를 여과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말, 라합, 우리아의 아내. 예수님의 족보에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여인들도 성경 속에는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는 원죄로 말미암아 완전부패, 전적타락한 인간을 무한한 자비하심과 긍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보게끔 하시는 주님의 깊은 배려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선한 일은 본받고 악한 일은 모양이라도 따르지 말라는 영적 교훈인 것입니다.

현대 크리스천들의 낯부끄러운 사건들이나 성경 속 인물들의 수치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실로 인간 스스로는 그 누구도 의로워질 수 없음을. 또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나게 하심이 도리어 감사의 조건임을 보게 됩니다.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는 영혼의 치부를 세상에 드러내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니 말입니다. 죄가 은폐되어지고 숨겨진다면 그건 더 큰 문제이니까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날에 은밀히 행한 모든 일들을 직고하게 될 텐데, 도리어 이곳에서 창피당하고 수모를 겪는 것이 영혼의 유익임을 보게 됩니다.

은밀히 행한 다윗의 범죄를 나단 선지자가 꾸짖자 다윗은 눈물로 침상을 젖시며 통회를 하였습니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삼하12:12).

다윗을 보면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측량범위를 넘습니다. 엄중하고 치밀하시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죄의 회복을 위한 아픈 치유의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치유의 방법까지 논하며 이렇게 저렇게 고쳐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끌어가시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임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나단 선지자 같은 역할을 하게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방법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분노하며 거듭 죄를 짓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윗처럼 울면 됩니다. 앞장 선 교회의 지도자들부터 성도들까지 모두가 무릎을 조아리며 울어야 할 때입니다. 너와 내가, 우리가 함께 울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요나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와 성공을 좇는 기복주의와 맛을 잃어버린 믿음만능주의의 인격과 삶이 결여된 빛바랜 은사만능주의의 바벨탑을 허물어버리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니느웨 왕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 심지어 짐승들조차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철저하게 회개의 무릎을 꿇었던 성경의 역사를 깊이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온갖 치부가 백주대낮에 만방으로 드러나 온갖 수치심에 고개 숙일지라도 다시금 다윗처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용기를 발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과하지 않으시지만 마음이 상한 자를 결코 외면치 않으십니다. 세상에 드러난 교회의 악과 부패가, 개인의 일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매스를 대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리의 최고의 명의이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2:17).

혼란한 세상 속 기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금이 은총의 시간입니다. 분노와 수치, 모욕의 손발을 겸손히 조아리고 주님을 깊이 묵상해야 할 때입니다. 피조물로부터 심문을 받으시고 무자비하게 옷을 벗기어도 묵묵히 침묵하셨던 주님의 그 겸손을 배울 때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아닌 이 땅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자비한 손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가슴 아픈 사건들을 접하면서 더욱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문제투성이요 골칫덩어리 인생들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 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에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 형제의 수치가 나의 수치임을 또한 기억하며 비난하기에 앞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사랑이 우리 안에 절실히 필요함을 보게 됩니다. 큰 업적을 남기기보다는 일생 겸손한 마음으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면 얼마나 복될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자로 겸손되이 행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길이 최선임을 다시 기억하며 결단합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