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당신에게

요즘 봄은 초여름을 닮아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여 싱그럽다. 꽃 사이로 벌이 윙윙거리며 날아오른다. 봄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 활기차다. 활기찬 벌을 보니, 그늘진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콧노래가 나온다.

직장을 오고가는 버스 안은 한적하다. 전엔 버스를 타면 멀미가 나서 빨리 내리고 싶었는데, 요즘은 나름 즐겁다. 마치 승용차를 타듯 항상 앉는 좌석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읽는 책은 꿀맛이다. 그동안 이래저래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 독서를 못했었는데, 책과 동무를 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해서 때론 내리는 것을 미루고 싶을 때도 있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데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음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버스에 설치되어 있는 TV나 창밖 너머로 오고 가는 사람들과 사물에 자꾸 눈이 빼앗겨 마음이 어지럽혀지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탄 어른 승객들은 거의 무표정하고, 젊은 학생들은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꼽고 있다. 대부분 유용한 정보보다는 대중음악을 듣거나 톡을 하거나 웹 서핑을 하거나 미디어를 시청한다. 지하철을 타도 마찬가지다. 간혹 책을 읽거나 잠은 자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 폰을 주시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정보화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다.

살기 편한 세상이 되면 삶이 행복하고 마음은 더 풍요로워야 되는데, 사람들은 더 불행해지고 뭔가 쫓기듯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한다. 현실에 적응하여 살기도 벅차고 그것을 쫓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듯하다. 요즘은 넓은 집에 각자 방이 있어 부모와 자녀는 대화가 단절된 채 자신도 모르게 이기적인 삶을 고수한다. 부모는 일을 하거나 TV를 시청하고, 자녀는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컴퓨터에 빠져있다. 자연스럽게 고립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인생들이 되어가고, 마음 깊은 곳에는 외로움의 응어리와 눈물이 맺혀져 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말씀은 지금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어디 마음 하나 쉴 곳 없어 방황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많은 이들이 삶의 무게에 지쳐 버거워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살짝 손만 갖다 대도 곧 부서질 것만 같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비관하고 포기하는 이들마저 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무시로 주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어, 방황하거나 내면의 괴로움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삼킬 때가 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에 용기가 치솟다가도, 해결 받지 못한 문제를 끌어안은 채 마음을 졸이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도마처럼 보이고 만져지는 감각적인 주님을 찾다 믿음의 눈을 닫고 절망을 하며 울기도 하고, 나 홀로 고통과 외로움 속에 던져진 것 같아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어느 시인은 모든 꽃은 흔들리며 핀다고 노래했다. 그 흔들림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지독한 외로움과 번민 속에서 씨름도 하고 비바람에 흔들리며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예수님께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더욱 예수님께 붙어 있게 된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울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고 해도 그 눈물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거예요. 이리저리 찢기어 상처투성이 몸일지라도 우리 함께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로 나아가요. 예수님께서 친히 모든 고통과 상처와 눈물을 닦아 주실 저 하늘나라에 처소를 준비해 놓고 당신과 저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요.”

외로움과 아픔에 지쳐 울고 있는 영혼들이 푸르른 만물이 새롭게 소생하는(21:5) 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가길 소망해 본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