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고쳐주세요

학창시절, 함께 모여서 악기를 연습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하루의 대부분은 친구들과 함께 하곤 했다. 연습하려고 모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다로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았는데, 중심 이야기는 남자친구, 다이어트, 화장품 등이었다. 이 세 가지 주제들은 여학생들이 모이면 언제 어디서든지 몇 시간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큰 관심거리였다.

한창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이 생기던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영적인 주제를 던지면 금방 지루해 하고 듣기 싫어하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기도하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전도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들을 보며 한심한 생각도 들고, 답답한 마음도 들어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세상적이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습니까?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그런데 주님은 기도와는 달리 나의 눈을 여시어 내면의 은밀한 곳을 조명하셨다. 세상을 사랑하고 싶지만 목회자의 딸이라는 외식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욕심이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열성 뒤에 숨겨진 교만과 질투 등 사실은 누구보다도 더 순결치 못한 세상적인 나의 자아를 보게 하셨다.

천하만사 모든 문제의 원인은 다 내게 있는 것이다.” 이세종 성자의 제자이며 동광원 믿음의 어머니로 알려진 손임순이 남긴 말씀이다. 수레기 어머니라 불리는 그녀는 4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시집 갈 나이가 되어 등광리 마을 이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서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렇게 예쁘고 귀여운 자녀들이 9명이나 자라다 죽어갔다.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천도교에 가서 몇 년간 제사를 드리며 재산까지 다 털어 바쳤지만 눈먼 딸 하나 건지지 못했다. 이런 큰 절망가운데서 그녀는 이세종의 전도를 받게 된다.

수레기댁, 예수님 믿읍시다. 예수님은 돼지도 쌀밥도 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이요 회개의 눈물입니다.”

이세종의 전도를 받으며 귀가 열린 그녀의 영혼은 날듯이 기뻤다. 자신과 같이 죄 많은 인생을 위해 속죄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남은 인생을 다 바쳐 살겠다고 다짐했다. 특별히 남녀 간의 순결에 대해 철저했던 스승 이세종의 가르침을 받고 허리를 졸라매고 굶다시피 하며 음란과의 사투를 벌였다. 밤이면 밤마다 남편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남편은 이런 부인을 달래도 보고, 두들겨도 보고, 빌어도 보고 사정도 했으나 허사였다. 남편이 잠이든 틈을 타서 가만히 일어나 기도하러 밖으로 나가려 하면 벌써 알고 욕에 욕을 퍼부었다.

남편과의 싸움, 아니 음란과의 싸움이 시작된 지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송아지 같은 짐승이 자기 앞에 벌렁 누웠는데 그 하체가 남자의 하체였다. 어머니는 용기를 내어 달려가 그 짐승과 사투를 벌였다. 그랬더니 짐승은 자신이 죽는다고 슬피 울면서 사라졌다. 그날 밤부터 지옥이 천국으로 변했다. 남편은 눕자마자 코를 골며 편히 잠을 잤다.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천하만사 모든 문제는 다 내게 있는 것을 모르고 남편만 나쁘다고 미워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내 몸 안에 있는 음란의 마귀가 떠나니 자동으로 싸움이 끝이 난 것입니다.” 그때부터 남 탓을 하며 미워하고 정죄하던 율법의 잣대를 자신에게 돌렸다. “아버지,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새 은총과 평화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그대가 자신을 모든 사람들보다 열등한 자라고 여기지 않는 한 어떠한 영적 발전도 이룩하지 못했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쩐지 요즘 나는 주변 사람들을 한명씩 무대에 올려놓고 평가하고 있다. 작은 부족함을 스포트라이트로 조명하고 카메라로 줌 인(zoom in)하여 사람들의 결점을 탐구하고 있다. ‘저 사람의 결점은 왜 쉽게 고쳐지지 않는 걸까? 저 부분을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 텐데걱정하며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이여, 나는 저 사람과 같은 부족함이 없음에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오나, 저 사람은 그 부족함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을 테니 저 분의 부족함을 속히 고쳐주소서.” 이런 내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7:3).

내 겉사람 속에 숨겨진 더 새까만 욕망을 밝히시고 이제 성령의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초청하신다. 불량식품과 같이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사람들의 칭찬만 먹으며,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에 처한 나의 영적인 건강상태를 진단하신다. 티를 보인 상대가 실은 내게 있는 들보를 보게 하기 위해 보내신 주님의 선한 도구였다. ‘제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들보가 제 안에 있습니다. 저를 고치는 일이 가장 시급하오니 저를 고쳐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내게서 그 무엇도 아닌, 상한 심령과 회개의 눈물을 원하셨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