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밑거름이 되셨던 참 스승을 따라가는 삶
 
요즘은 물질이 풍요롭고 자녀도 적게 낳다 보니 자녀가 우상이 된 경우가 많다. 교단에서는 인권 운운하는 시대 탓에 스승의 인권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현실도 자주 본다. 그러다 보니 본받을 만한 참된 스승이 점점 사라지는 안타까운 세태다. 참 스승을 그리워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하였던 스승을 되새기며 본을 삼고자 한다. 

고난의 스승
20대에 돈 많이 벌어 이상적인 학교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나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던 내 인생의 멘토요 스승인 분이 계시다. 많은 분들이 영적 스승으로 그분을 존경했으나 정작 당신은 “저는 단 한 사람도 제자가 없어요. 저도 예수님의 제자예요. 다 같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그만이지 왜 엉뚱하게 생각하세요.”라며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셨다.
약 40년간 척추와 목뼈, 두 다리도 약간 오므린 채 마비되었고, 감각은 둔하지만 양팔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평생을 누워 살아야 하는 중증장애인이셨다. 말년에는 뇌경색과 대퇴부 골절상으로 더욱 고통을 받으셨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의 말씀을 지키셨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아, 언제나 예수님이 오실까? 이 지긋지긋한 세상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 이런 소리는 마음속에라도 없다고 하셨다. 단지 하루하루, 순간순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까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셨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얼굴로 누워 계시기 때문에 선생님의 형편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몸은 비록 마비되었으나 감각은 살아서 습도에 민감하여 환절기가 되면 남모르는 고통이 굉장하였다. 습도가 높으면 등 뒤의 옷은 순식간에 젖어버려 마치 시궁창에 누워 있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그러다가 공기가 너무 건조하게 되면 온몸이 오그라들고 주리를 트는 듯이 어렵다고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비틀어져 있으니 어깻죽지, 다리, 엉치뼈 등이 눌리고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셨다.

그런 고통을 참고 견디며 손님들을 만나 상담하고 성경공부도 인도하시고 공동체의 업무도 처리하는 등 많은 일들을 하셨다. 반면에 필자는 어설픈 목회와 사역을 하면서 좀 힘들고 어려우면 때로는 낙심하고 원망 불평도 하고, 절제, 회개, 기도생활 가운데 나타낸 부끄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났던 선생님을 자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내 교만과 독선과 아집 때문에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별로 끼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생전에 그분의 ‘신령한 밑거름 영성’을 좀더 잘 본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할 때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겸손의 대가
겸손과 인내와 충성의 산 증인, 주님께는 ‘아멘’만 하시고 ‘아니오’ 하지 않으셨던, 만인이 스승으로 섬기고 따랐지만 결코 자기를 높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가 잘 되기만 바라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신령한 밑거름이 되고자 하셨던 선생님. 그분은 많은 분들에게 참 스승이셨다.
때로는 사역자들이 어렵게도 하고, 자신의 요구대로 뜻대로 채워주지 않는다고 원망 불평해도, “허허, 그러시면 됩니까?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셔야지요.” 하며 넉넉한 가슴으로 품어주셨다. 겸손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겸손을 보여주셨고, 아가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 아픈 몸으로 자기를 부인하면서 깨우쳐주셨다.
“저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몸을 씻는 것도, 어디를 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생충 같은 사람입니다. 저로 인해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면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 겸손함에 놀라곤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선생님, 집사님, 성도님, 전도사님’ 하며 깍듯이 존칭을 붙이셨다. 당신 육체의 고통은 돌아보지 않으시고 서너 시간이고 치기어린 푸념과 넋두리를 들어주시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에도 일일이 겸손하게 응대해주셨다. 이제 어디서 그런 넉넉한 이해와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은 건강하고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일을 하고자 하지만, 어려움이 많고 괴로움이 심한 가운데 자기를 부인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 앞에서 더 크고 값진 것이라 강조하셨던 분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볼 때 건강하고 편하고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온다.
바울 사도는 육체의 가시였던 안질로 인해 세 번이나 치유를 위해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고 거절하신 주님. 그래서 사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고 도리어 크게 기뻐하였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후12:10). 

이처럼 선생님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육체의 십자가를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 뜻에 순종하여 누워 살겠습니다. 이렇게 육체의 악조건 속에서 진정 감사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말씀하셨던 선생님. 당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 오히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고, 이현필 선생님은 헌신짝, 마더 테레사는 주님 손에 든 몽당연필, 최춘선 목사님은 멸시천대를 마다하지 않으며 맨발로 전철 안에서 전도하셨고, 선생님은 생전에 인간 기생충이라며 자신을 진심으로 낮추시던 겸손의 대가셨다. 나도 그렇게 스승을 본받고자 몸부림쳤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하고 영적으로 진보했을 텐데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다. 지난 시절 그리움이 사무치나, 아쉬움만 남긴 채 스승은 떠나가고 이제 내 부끄러움만 남았다.
본받을 만한 참된 스승이 부재한 이 시대를 통탄하면서,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계신 그 선생님의 겸손이 깊이 사무친다. 내 교만과 독선과 아집을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영성의 참 모습을 보여주신 스승의 길을 겸손히 따라가고자 결단해본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