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29세의 젊은 나이로 주님 품에 안긴 맥췌인 목사가 강단에 서는 순간 청중은 벌써 눈물을 흘리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기도와 금식으로 허약해진 몸으로 겨우 강단에 올라간 어느 성직자가 복음을 전했을 때, 교우들이 의자를 붙잡고 몸부림치는 통회가 빈번히 일어났다고 한다. 이들은 그 많은 분량의 시간을 사랑하는 주님과 보내는 데 인색치 않았던 영성의 대가들이다.

루드포드는 종종 수면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말했고, 스펄전 역시 잠자면서 설교했고, 그 설교 요점을 부인이 받아 적은 것을 교회에 나가 또 설교했다고 한다. 밤낮 구별 없이 그리스도와 친밀한 영교를 가졌던 경건한 종들에 의해 사탄의 포로로 묶인 숱한 영혼들이 줄줄이 해방되는 경사가 일어난 것이다. 무디는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할 때마다 울먹이는 소리로 절규했고, 기도의 무릎을 세차게 흔들어대었기에 1천만 명의 사람을 주님 품에 안겨드렸다. ‘하나님과 달콤한 교제를 즐겼던 휘트필드는 온 밤을 기도와 찬양으로 지새우는 때가 많았고 최고 8만 명까지 운집한 야외에서도 육성으로 외쳤던 당시에, 그들의 영혼을 한 사람처럼 사로잡고 뒤흔들었던 괴력을 발산하였다.

18세기, 19세기는 오염된 지구를 신선한 공기로 통풍시킨 영적 거두들의 등장으로 하나님 나라가 영화롭게 꾸며졌고 권능 있는 사도시대를 재현시켰다. 영적 황홀감을 선물받은 시대였다.

21세기에 사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여!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렇게도 사무치는 음성으로 내가 네게 들어가 먹고 마시고 싶다.”(3:20)는 우리 주님의 간청을 보기 좋게 거절한 채 매정스럽게 문 잠그고 있지 않은가? 도리어 온갖 쓰레기들을 무한정 안에 들여다 놓고 히죽거리며 도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성 결핍증으로 얼굴은 창백하고 무기력으로 나약해진 오늘의 21세기 교회가 아닌가? 마귀와 대항할 계획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닌가?

에드위나 여성은 신부가 되어 주님께 몸을 바치고 싶었다. 그러나 용납될 수 없는 당시 직제에 주춤한 그녀는 사막에 내려가 3개월간 애절한 기도를 드렸다.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고 깊은 감화를 끼쳤다. 얼마 후 그곳에 있는 창녀 500여 명이 헌신하여 세계에 선교사로 나가서 마귀를 통곡시키는 대사를 일으켰다. “나는 상처와 피 흘림이 없이 나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루드포드)는 신념으로 살았던 거룩한 분들의 희생정신으로 우주의 전염병들이 자취를 감추고 지구는 치료를 받았다.

웨슬리의 부흥운동으로 영국이 구원받았고, 조나단 에드워드에 의한 대각성 운동으로 미국교회가 파멸에서 건짐받았다면 오늘의 암흑세계도, 조용하면서도 땅을 흔드는 기도의 사람들이 더해질 때 사탄의 왕국은 무너질 것이다.

주님 곁으로 바짝 다가가 예수님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을 전수받는 일을 모든 일의 우선순위로 정하자.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애인이 되자! 할렐루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