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포도밭 가꾸기

“커다란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자신의 작은 포도밭을 가꾸는 사람은 그곳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돌보아 탐스런 열매를 수확합니다. 여러분은 거룩해지기 위해 날마다 작은 기회를 잘 잡으십시오.

성 알베리오네(1884~1971, 이탈리아)의 말씀이다. 작고 왜소한 시골출신이요 무일푼인 그가 매스컴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는 혁명을 일으키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려 10개라는 수도회를 창설하였고, 오늘날 “새 시대의 예언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바오로의 대가족을 이루는 영적 거목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남들이 주목하는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신 분이 아니었다. 그가 영적 거목이 되기까지는 언제나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희생의 밑거름으로써 영적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6살이 되던 무렵 그는 “성덕이란 어떤 지점에 안주하여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투쟁일 뿐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그의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이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14년 동안 오직 기도에만 충실하면서 묵묵히 그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29살 때, 알바 교구 주간지 편집을 맡음으로써 첫발걸음을 떼어 놓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2명의 선생과 22명의 학생으로 “인쇄 기술학교”를 시작하였는데, 그는 결코 서두르는 일이 없었다. 놀라운 인내로 신중하게 수도회의 기반을 닦아 나갔다. 그는 이미 준비된 인재를 택한 것이 아니라 어린 소년들을 처음부터 양성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무엇을 하기 이전에 기도를 하였다. 또한 매일의 일과에서 쉬운 것보다는 어려운 것을 택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였다.

그는 참된 진리를 따라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은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신뢰 안에서 노력함으로써 조금씩 진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어려운 것이기에, 더욱이 기도가 앞서야 함을 늘 강조하였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성공적으로 활기 있게 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1917, 성탄절 밤이었다. 난로 과열로 불이 나 인쇄 기술학교와 기계가 모두 잿더미로 변하였다. 전 재산을 몽땅 잃어버린 치명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건강까지 좋지 못해서 복구 작업에 나섰다가 두 번씩이나 졸도를 하고 무릎을 다치는 등 어려움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소죄 한 번을 범하는 것보다 이런 재난을 당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님만을 믿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불행이란 죄뿐이다. 외적 재난이란 오히려 은총인 것이다. 하나님께만 완전히 신뢰하고 맡기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시련이 닥쳤을 때 믿음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 불행도 고통도 시련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았다. 어떠한 일이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일일지라도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또한 “현세에서나 후세에서 당신의 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는 지극히 작은 자이길 원했다. 그러기에 어떠한 사소한 일도 대충 넘기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의 부탁이라도 가벼이 넘기지 않았으며,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어떠한 일들이 자신에게 불합리하고 불이익을 가져다주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의 삶의 축은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나 성공이 목적이 아니었다. 오직 구석구석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며 부지런히 작은 포도밭을 가꾸며, 거룩을 이루기 위한 영적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가 양육하는 모든 이들도 큰 업적을 이루는 야심가가 아닌 성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의 초장기 시절은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업에 대한 전망은 어둡고 누구 하나 동조해 주는 이도 없었다. 이로 인해 회의와 실망을 느낀 회원들이 그를 찾아오자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사람들은 10이라는 숫자를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10이 되기까지는 하나에서 아홉까지의 숫자가 있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작은 일 한 가지 한 가지를 새롭게 보고 그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금전이 아니라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시작해야 합니다. 야심을 가진 사람이 열심한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전진 하십시오. 나는 우리 회원들이 성인이 되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에게 다른 소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성인이 되는 것뿐입니다.

난 눈도 작고, 키도 작고, 손발도 작고, 마음도 매우 여리다. 내가 하는 사역들이 남들보다 뒤처지고 작게 느껴질 때면, 마음이 쪼글쪼글 잘 오그라든다. 실패할까봐, 나의 약점이 드러 날까봐 안절부절못하며 우거지상을 할 때도 참 많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초라함으로 직결되어 불평의 씨앗이 되곤 한다. 그러나 정말 초라하고 부끄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외모와 어떤 성과가 아니었다. 어두운 마음과 행실들을 가벼이 여기며 탐욕으로 어두워져 단추 구멍처럼 되어버린 양심의 눈이었다. 희생하기 싫어 오그라든 작은 손과 발이었다. 평안하고 고통이 없는 지금의 삶에 안주하고파 영적투쟁을 하지 않고 멈추어버린 작은 키였다.

그동안 어리석게도 작은 포도밭을 가꾸는 일은 소홀히 한 채, 이웃의 큰 포도밭만 탐하고 아이마냥 떼를 쓰며 울고 있었다. 날마다 거룩해지기 위해 작은 기회들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크고 화려한, 남들이 주목할 만한 큰 기회만 잡고자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비록 작고 하찮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 가운데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 영적투쟁을 하는 것이 귀한 것임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의 작은 기회들이, 저 하늘에 상급을 쌓을 수 있은 절호의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한 나의 작은 포도밭에 진딧물이 끼이지 않도록, 잡초가 무성해지지 않도록 다시 구석구석 숨겨진 작은 죄들을 찾아서 깨끗이 씻어야겠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