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
20대 초반, 「어느 인생 이야기」를 통해 소화 데레사의 일대기를 접하며 거룩한 성녀(聖女)가 되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용도 목사님의 전기를 읽고 나서는 33살까지 불꽃처럼 예수님을 위해 살다가 장렬하게 죽겠노라 결단도 했다. 그런데 어느새 오십이 가까워졌다. 최근 몇 주간 허리통증이 계속 이어져 웬만해서는 가지 않던 병원을 방문했는데, 5번과 6번 경추 사이가 퇴행성으로 구멍이 좁아졌다는 진단을 받고서는 건강에 신경이 쓰였다.
40살 언저리에 나타났던 몸의 변화는 건강한 머리카락 속에 섞인 몇 가닥의 새치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은 젊음 쪽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시해버릴 수 있지만 늘어가는 흰머리만큼이나 몸의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몸에는 확실하게 세월의 흔적이 새겨지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거울보기가 두렵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사실은 내 안에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는 열의도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를 위해 물질도 조금 저축해야 하는 게 아닐까? 늙으면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건강을 챙겨야지. 남들도 절제생활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데, 이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내 안에 세상적인 두려움과 영적인 안일함으로 영성생활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지난 2주간 터키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젊은이도 빡빡한 일정 속에 힘들어하는데, 일흔이 넘은 권사님께서 거뜬하게 따라다니시는 것을 보고 골골거리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과 눈 덮인 산길을 굽이굽이 지나 사도바울이 걸었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내 안에 다시 불꽃이 일어났다.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 나이 듦을 핑계로 멈추었던 절제와 금식도 회복하고 철저한 영성생활로 돌입하자. 세월의 흔적에 뒤처지지 말고 한번 뿐인 인생, 힘차게 전진하자. 이왕 죽을 바에야 주님을 위해 닳아 없어져 보자.”고 용기를 내었다. 
그러나 터키 음식과 시차 부적응, 원활하지 않은 신진대사, 목의 통증과 두통 등. 2주간 내내 몸의 상태에 따라 양은냄비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어버렸다. 감정변화를 보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캐리어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보면서 나의 허례와 욕심도 눈에 들어왔다. 침대위로 올라오는 찬 기운과 습기에 살짝살짝 불평을 하며, 작은 고통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맞바꾸지 못하는 나의 영적인 허약함을 보면서 주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 건강상태나 나이에 상관없이 예수님의 사랑이 결코 식지 않았던 장 마리 비안네의 삶이 차가운 내 심장 안으로 파고들었다.
14살 무렵, 그는 좌우명을 ‘모든 것을 사랑하는 하나님과 더불어!’라고 정하였다. 그가 후일에 덧붙이기를 “모든 것은 세어질 것이다. 조금이나마 눈을 즐기는 것을 포기한 것, 만족을 억제한 것, 이 모든 것은 기록될 것이다. 겨울철에도 그들은 모든 것을 유익하게 사용한 사람들이다. 즉 추우니까 그 작은 고통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하나님과 더불어 행했기에 불편함이나 작은 고통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감자나 거친 빵으로 끼니를 이었고, 자주 금식했으며, 매일 긴 시간 동안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면서 힘을 얻었고, 성화를 간구했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한 간단하고도 보통의 음식도 거부하고 조그마한 단 과자도 드시지 않았다.
주로 단식과 차고 곰팡이가 슨 감자로 만족하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로 저축을 하지 않았다. 한 움큼의 밀가루로 만든 빵 3개와 물 조금으로 생활을 하였고, 나중에는 이것이 2-3일의 식량이 되기도 하였다. 잠자는 것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마귀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음식과 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더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는 것은 그 외엔 없습니다.”
또한 삶의 목적은 자신의 안위보다 “모든 것 중의 제일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였다. 성전을 아름답게 만들 경제가 허락지 않으니까, 사제관의 거의 모든 가구를 없애기 시작했다. 비단으로 싼 의자들, 팔걸이의자, 식탁, 두 개의 침대, 이불  등 자신은 발레 사제가 유산으로 남겨준 소박한 나무 침대와 서적들과 몇 가지의 누더기밖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얼마안가 사람들은 “여기에 누군가 산다고 짐작은 했지만 유령의 거처인가 싶었다.”
성도들이 보낸 침대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자신은 짚 가마니에서 잠을 잤다. 심지어는 짚 가마니에서 잘 때도 편히 잘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가마니 속에 나무판자를 넣어 생활을 하였다. 그나마 침대 속의 짚을 매일 조금씩 빼내어 나중에는 나무판자만 남게 되었다. 몇 주일 동안 방안에 있는 포도나무의 작은 단 위에서 잠을 잔 관계로 습기로 말미암은 얼굴 신경통으로 15년 동안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주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그의 다락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며 극기 훈련을 쌓았다.
항상 한 벌의 수단밖에 없었고 그 수단이 다 떨어져 없어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고치는 일은 아주 필요한 때만 허락했고, 모자는 한 번도 갈지 않고 구두도 한 번의 구두약이나 솔을 댄 적이 없었다. 한번은 교인들과 동료들이 돈을 모아서 바지를 해서 입혀 드렸다. 그런데 살을 에는 추위가 있는 날 성전으로 가다가 가난한 사람을 만나자, 망설임 없이 수풀 뒤에 몸을 숨겨 바지를 손에 흔들면서 나타났다. 며칠 후 그들의 선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하기를 “당신들은 그 바지를 선물로 나에게 주었습니다만 나는 그 바지를 길가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 영원히 빌려주었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는 열정을 바쳤다. 금 세공사가 놀라며 말했다. “키가 작고 빼빼 마르고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단돈 한 푼도 없어 보이는 시골뜨기 성직자가 자기 성전을 위해서는 제일 좋은 것을 요구하는군요.” 그리하여 부임할 당시에 곳곳에서 물이 새고 허물어져 있던 성전을 가장 좋은 것으로 꾸며 증축했다. 그는 고백한다. “나의 하나님, 저희 본당의 회개를 허락해주소서. 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고통을 일생 동안 참을 각오가 되어있나이다.” 
나도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야겠다. 내 삶의 작은 고통과 십자가들을 주님의 도움과 은총으로 달갑게 지고 갈수 있도록 끊임없이 무릎을 꿇어야겠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점점 쇠약해져가도 주님을 향한 사랑을 불태우며 다시 달려가자. 모든 것을 사랑하는 하나님과 더불어 한다면, 더 이상 아픔과 고난은 고통이 아니다. 주님 때문에 건강과 잠과 음식을 포기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으랴. 쉼 없이 이 길을 달려가자.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 세상 것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노래하며 나아가리라.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주시는 선물을 가득 안고 활짝 웃을 그 날을 꿈꾸며 기쁨으로 나아가리라 결단한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