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나님

1912년에 출판된 미국의 여성작가 진 웹스터가 쓴 『키다리 아저씨』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영원한 고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 소소한 감동을 받았다.

주인공 저루샤 애벗은 고아원에서 자라났고, 성적이 좋아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 갈 나이가 되었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고아원에 돈을 기부하던 한 평의원이 저루샤가 쓴 글을 보고 작가로 키우겠다며 장학금을 대주고, 용돈도 주면서 대학교에 다니게 해주었다. 그는 저루샤에게 자신의 이름이나 신분을 숨긴 채, 4년 동안 편지를 보내게 하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학교생활과 자신의 생각에 대하여,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까지도 편지에 쓴다. 저루샤는 편지를 쓸 때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며 주디 애벗이라고 이름을 바꾸는가 하면, 학교에서 배운 공식을 대입해서 편지를 쓰는 등 엉뚱하고 기발한 내용의 편지들을 쓰게 된다.

무척 감동하거나 혹은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투정을 부리는 등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편지에 옮겨 지금 인생에서 가장 도움을 주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게 된다.

고아 소녀 주디처럼, 내게도 하늘 끝까지 닿도록 크신 분이 있다. 영적인 고아였던 나를 그분의 호적에 올려놓으시고 때마다 필요를 채워주시고, 나의 작은 장점을 찾아내시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기까지 영원한 후원자가 되어 주시는 분. 때로는 투정도, 사소한 일도, 지극히 작은 눈물 한 방울의 이야기에도 귀담아 주시는 분. 낮에도 밤에도 나의 모든 출입을 아시는 그 분께 마음을 담아 영혼의 편지를 써본다.

믿음의 펜으로 주소를 적고, 사랑의 마음을 듬뿍 담은 우표를 붙여서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분께 언제나 편지를 띄울 수 있기에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전 요즘 논문, 리포트, 공동체 일 등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바쁘고 지친다고 간혹 투정을 부리는데, 하나님은 쉴 틈도 없이 바쁘시겠죠. 하늘의 우체통에 배달된 편지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게으름 피우고 하기 싫어서 미루다 보니 지금은 몸이 8개라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제, 분주한 틈에 저를 잠시 돌아보게 하는 일이 있었어요. 신문사에 출근하는 길이었는데, 할머니 한분이 손수레에 상자를 싣고 지나가고 계셨어요. 제 눈을 고정시킨 건 다름 아닌 할머니의 옷이었어요. 등은 90도로 구부러지고 추운 날씨 속에서 천천히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데, 얇은 티 위에 얇은 스웨터 하나밖에 안 걸치셨어요. 그걸 보는 순간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추운데 왜 저렇게 옷을 얇게 입으셨을까? 옷이 없으신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으신 건지.’ 계속 쳐다보면 할머니가 멋쩍어 하실까봐 가던 길을 갔죠. 그 순간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 하루가 지난 오늘에서야 고민거리가 되었어요.

카타리나 성녀가 추워서 떨고 있던 거지에게, 동료들의 비난도 감수하고 한 벌 밖에 없는 외투를 벗어 준 것처럼, 저도 할머니에게 제 겉옷을 입혀드려야 했을까요? 그때는 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지. 양심도 어둡고 착하지도 어린아이같이 순수하지도 못하고, 저를 희생할 만한 용기도 부족하기 때문이겠지요.

가끔 상상을 했거든요. 길을 가다가 불쌍한 분이 추워서 떨고 있으면 웃으면서 제 겉옷을 벗어주어야지. 그런데 막상 현실에 닥쳤을 때는….

이런 저를 보고 하나님 마음도 아프시겠죠? 때로는 할머니로, 아이로, 불량 청소년으로, 노숙자로, 걸인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품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오늘 하루를 주신 것은 어떤 성과가 아닌 사랑할 시간을 주신 것인데, 저의 삶의 공식을 대입하여 제 모습과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랑할 기회들을 놓치고 있어요.

제게 주어진 지금 이 시간,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할 일들을 소중히 여기게 도와주세요.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제게 주어진 일들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은총을 내려주세요. 오늘 지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늘나라에 사랑의 편지들을 하루하루 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게으름뱅이 작은 물고기 드림.”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