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주님은 네가 너와 끝 날까지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시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우리는 걱정과 염려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기근과 지진, 폭력과 전쟁, 테러 등. 악으로 치닫는 각박한 세상을 보면 염려의 주름살은 더 늘어간다. 때론 염려와 근심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염려들도 인해 마음의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우리가 염려하는 거리들 중 현실 속에서 진짜 일어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를 연구한 어느 미국 대학의 심리학 팀의 조사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40%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었다. 하지 않아도 될 공연한 걱정을 그만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걱정거리 중의 30%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걱정한다고 되는 일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쓸데없는 걱정거리들이라는 것이다. 10%는 병에 관한 한 걱정거리다. 그중엔 실제는 걸리지 않을 병에 관한 것도 많다. 진짜로 걱정할만한 것은 8%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8% 중에서도 정말로 머리를 싸매고 걱정할 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결론이다. 우리는 아무리 걱정해야 소용도 없는 일들에 대해 걱정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면 쓸데없는 걱정들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이 가득한 한 청년이 피일 박사에게 물었다. “박사님. 제게 걱정 없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도 그런 곳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피일 박사가 대답했다. “바로 이 넘어 있는 공동묘지일세.”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뿐이라는 것이다. 갈등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는 꺼리들로 인해 범죄를 하고, 누군가 이웃을 고통스럽게 했다면 그것은 사후에 심판받을 일로 남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또한 근심과 염려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잘 감당해 나가고 아픔 중에 있거나 연약한 이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며 섬겼다면 사후에 상급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염려와 근심의 찌꺼기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속히 털어 버리고, 씻어내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님께 맡겨 버릴 수 있는 용기도 더해져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어제와 내일을 오늘의 현장에 갖다 놓고 염려를 더해 가며 염려의 닻줄에 매여 오늘을 버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주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8)라고 말씀하고 있다. 염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분열된 사람이다. 염려는 죄악이다. 염려한다면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거짓말 장이로 비난하는 것이다(8:28, 13:5). 염려는 하나님의 성전인 인간의 신체에도 해롭기 때문에 죄이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마음을 한 곳에 쏟는 사람보다 염려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답을 하자.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순간 주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 가운데 어렵고 힘든 환경으로 마음고생이 많았을 지라도 그것이 곧 주님의 은총이었다. 또한 주님께서 필요하기에 허락하신 것이다. 더욱 주님에 대한 절대 믿음과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즐겁게 십자가를 지고 남은 길을 달려가자.

이정란